차별 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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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 비용차별에 가담하기 위해 혹은 차별을 유지하기 위해 개인 또는 사회가 치러야 하는 비용이다.[1]

이러한 비용은 차별에 가담하는 권력층에 있는 개인도 여러 형태로 치르게 되는데, 예컨대 병역의 의무를 남성만 진다든가, 가정의 경제적 부양 의무가 남성에게만 지워진다든가 하는 것 등이다.[2] 그러나 이렇게 기득권이 치르는 비용은 '차별을 사는 대가'라고 볼 수 있다. 남성들은 여성혐오를 통한 젠더 권력 유지를 위해 맨박스에 스스로를 가두는데, 보통은 자신이 여성혐오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도 못하며 결과이자 이유인 맨박스를 역차별이라고 주장한다. 기득권이 치르는 차별 비용의 특징은 '차별 내용은 묵과하되 차별 비용을 부각시켜 차별을 더욱 공고히 하는 데에 이용'된다는 것이다.

사회 또한 차별을 유지함으로써 경제적인 대가를 치르게 되는데 이는 GDP를 끌어내리는 요소이기도 하다.[3]

출처

  1. 성영주 (2017년 2월 16일). “가장 영리한 방식으로 말하는 남자, 손아람[[조선국|조선]]의 변천 과정과 주요 사건. ==고려 말== ;1388년:위화도 회군
    [[이성계]]의 군사 쿠데타. 이성계는 4불가론을 내세워 요동([[명나라]])정벌을 반대했는데, 끝내 공격 명령이 내려지자 군사를 이끌고 가다가 명나라 코앞 위화도에서 그냥 말을 돌려 개경을 점령했다. [[최영]] 및 권문세족들을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 ;1389년:이성계, [[우왕]]·[[창왕]]을 '[[신돈]]의 자식'이라며 연달아 폐하고 [[공양왕]]을 추대. ;1391년:[[조준]], [[정도전]] 등이 급전도감을 통해 [[과전법]] 실시.
    전현직 관리에게 경기 지방의 토지를 과전으로 분급, 신진 사대부의 경제적 기반 마련.
    세습 금지가 원칙이었으나 수신전·휼양전 명목으로 세습되기도 함 ;1392년:[[정몽주]] 등 온건파 제거, 공양왕에게서 이성계로 왕위 선양 ==조선 전기== ===[[조선국/태조|태조]]=== ;1393년:국호를 "[[조선]]"으로 정함 :도평의사사에서 군정을 의흥삼군부로 분리 ;1394년:도읍을 [[한양]]으로 천도 ;1398년:제1차 왕자의 난
    태조가 방석을 세자로 책봉하자 방원이 사병을 동우너하여 방석·방번을 살해하고 정도전·남은 등 개국공신을 제거, 실권 장악 ===[[조선국/정종|정종]]=== ;1399년:개경 천도 :도평의사사를 의정부로 개편 :중추원 폐지, 정무와 군무를 분리 ;1400년:제2차 왕자의 난
    친형 방간이 거병하자 방원이 이를 진압하고 정종에게서 양위받음 ===[[조선국/태종|태종]]=== ;1401년:저화(지폐) 발행, 널리 통용되지는 못하였다. :[[신문고]] 설치 ;1403년:주자소 설치, '계미자' 주조 ;1405년:한양 환도 ===[[조선국/세종|세종]]=== ;1419년:대마도 정벌 ;1426년:3포 개항(동래, 진해, 울산) ;1443년:[[훈민정음]] 창제 :계해약조: 세견선 50척·세사미두 200석으로 대일무역 규모 제한 ;1444년:공법(전분6등법·연분9등법) 실시 ;1446년:훈민정음 반포 ===[[조선국/문종|문종]]=== ;1451년:'[[고려사]]' 편찬 완료 ===[[조선국/단종|단종]]=== ;1453년:계유정난: 수양대군의 쿠데타 :이징옥의 난 진압 ===[[조선국/세조|세조]]=== ;1466년:직전법 실시, 수신전·휼양전 폐지 ;1467년:이시애의 난, 유향소 폐지 ===[[조선국/성종|성종]]=== ;1470년:관수관급제 실시: 수조권을 지방 관청에서 행사 ===[[조선국/중종|중종]]=== ;1512년:임신약조: 제포([[진해]])만 개항. 세견선 25척·세사미두 100석으로 무역 규모 제한 ;1544년:사량진왜변, 대일 교역 중단 ===[[조선국/명종|명종]]=== ;1547년:정미약조: 세견선 25척 규모로로 무역 재개 ;1555년:을묘왜변: 대일 국교 일시 단절, [[비변사]] 상설기구화 ;1556년:직전법 폐지 ===[[조선국/선조|선조]]=== ;1592년:[[임진왜란]] ;1597년:[[정유재란]] ===[[조선국/광해군|광해군]]=== ;1608년:경기도에 대동법 실시 ;1609년:기유약조: 부산포(왜관)만 개항, 세견선 20척·세사미두 100석으로 무역 규모 제한 ;1610년:[[허준]], [[동의보감]] 편찬 완료 ;1623년:인조반정 ===[[조선국/인조|인조]]=== ;1624년:이괄의 난 ;1627년:[[정묘호란]]
    [[얀 얀스 벨테브레이]]([[박연]])가 [[제주도]]에 표류, 이후 귀화 ;1635년:세종 공법 폐지, 영정법 실시(논밭 세율을 최하등급으로 고정) ;1636년:[[병자호란]] ==조선 후기== ===[[조선국/효종|효종]]=== ;1651년:설점수세제 실시: 허가받은 민간인만이 광산을 채굴할 수 있도록 함 ;1653년:[[헨드릭 하멜]]이 [[제주도]]에 표류 ;1654년:1차 나선 정벌 ;1658년:2차 나선 정벌 ===[[조선국/현종|현종]]=== *[[예송논쟁]] ===[[조선국/숙종|숙종]]=== *환국(換局)
    정국을 주도하는 당파를 급격히 교체하여 붕당의 기반을 약화한 사건들이다. **1680) 경신환국
    남인이 북벌을 내세우며 군권 장악을 시도하고 유악남용사건을 일으키자 서인의 탄핵(삼복의 변)으로 남인을 축출하였다. **1689) 기사환국
    서인이 [[장희빈]] 아들(경종)의 세자 책봉에 반대하자 숙종은 [[송시열]]을 [[제주도]]로 유배하고 [[인현왕후]]를 폐비하였다. **1694) 갑술환국
    남인이 서인의 인현왕후 복위운동을 탄압하였는데, 숙종이 서인 편을 들어 인현왕후를 복위하고 장희빈은 강등하였다. 이로써 서인이 재집권하였다.
    서인은 권력에서 밀려난 남인의 처분을 두고 강경파 노론과 온건파 소론으로 분화하였다. ;1682년:금위영 설치 ;1701년:[[인현왕후]] 병사, 무고의 옥 ;1708년:대동법이 평안도·함경도·제주도 제외 전국으로 확대 ;1712년:[[백두산정계비]] 설치 ===[[조선국/경종|경종]]=== ;1721년:1721년과 1722년에 걸쳐 '신임사화' 발생, 소론의 집권 ===[[조선국/영조|영조]]=== ;1729년:기유처분: 완론 탕평 선언(실질상 노론 우세) ;1729년:노비종모법 ;1746년:'속대전' 편찬 ;1750년:균역법 실시: 백성의 군포 부담을 반감 ;1760년:청계천 준설 ;1762년:임오화변: 사도세자 사망 ;1772년:통청원음: 서얼들의 청요직 진출 허용 ;1675년:별장수세제 폐지, 수령수세제 채택: 민간에 광물 채굴을 허용하고 세금은 지방 수령이 관리 ===[[조선국/정조|정조]]=== ;1776년:규장각 설치 ;1791년:신해통공: 육의전 제외 시전의 금난전권 폐지
    진산 사건: 윤지충이 모친상에 신주를 불사르고 [[천주교]]식으로 장례를 치름 ;1796년:수원 화성 건설 ===[[조선국/순조|순조]]=== ;1801년:신유박해
    공노비 해방 ;1811년:홍경래의 난 ;1832년:[[영국]]의 로드암허스트호 내항, 통상 요청 ===[[조선국/헌종|헌종]]=== ;1839년:기해박해 :5가작통법 시행, 척사윤음 반포 ;1846년:병오박해 :[[김대건]]이 황해도에서 체포, 처형 ===[[조선국/철종|철종]]=== ;1860년:최제우, [[동학]] 창도 ;1862년:[[임술농민봉기]] ==개항기== ===[[대한제국/고종|고종]]=== ;1864년:동학 교주 최제우 처형 ;1865년:[[만동묘]] 철폐 ;1866년:병인박해 :[[제네럴 셔먼 호 사건]] :[[병인양요]] ;1868년:남연군묘 도굴미수사건 ;1871년:서원 철폐 :[[신미양요]] ;1873년:[[흥선대원군]] 하야 ;1875년:[[운요호 사건]] ;1885년:영국의 거문도 점령(~1887) ;1886년:노비 세습제 폐지 ;1894년:[[갑오개혁]] ==대한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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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성격/역사]] [[분류:주제/조선국]]”
    . 《여성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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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코스모폴리탄 (2017년 6월 30일). “성 평등 의식 없는 남자들에게 고함”. 《허프포스트》. 
  3. Sophie McBain (2014년 2월 12일). “Gender inequality is costing the global economy trillions of dollars a ye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