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활란(한문: 金活蘭, 일본식 이름: 아마기 가쓰란(天城活蘭), 자는 기득(己得). 호는 우월(又月). 세례명 헬렌(Hellen), 1899년 1월 18일 ~ 1970년 2월 10일)은 일제 강점기의 일제 여성운동가, 언론인이자 교육자이다.
한국여협 초대회장이었던 김활란을 기리기 위해 사후에 김활란 여성지도자상이 제정되었다. '김활란 여성지도자상'은 여성의 정치·경제·사회적 발전과 양성평등 실현을 위해 리더십을 발휘한 여성 지도자에게 수여된다.
또한 자신의 제자를 전쟁터에 보낸=위안부로 보낸 몇 안돼는 여성 페미니스트이기도 하다. ???
생애
- 1899년 1월 18일 경기도 인천에서 김진윤과 박또라 사이에서 태어났다.[1]
- 1907년 인천 영화여학교에 입학[1]
- 1908년 온 가족이 서울로 이주하여 이화학당에 전학하고 고등과에 진학[1]
- 1918년 제5회로 이화학당 대학과 졸업[1]
- 1920년 6월 이화 7인 전도대를 조직하여 전국을 순회하며 여성계몽강연을 하였다.[1]
- 1922년 4월 22일 김필례, 유각경과 함께 조선여자기독교청년회 창립[2][3]
- 1925년~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로 재직[1]
- 1930년~ 미국 유학[1]
- 1939년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장으로 취임[1]
- 1945년 9월, 여성기독교청년회(YWCA)를 재건하고 회장 취임, 한국여학사회를 창설하고 회장 취임
- 1945년 12월, 대한독립촉성부인회 조직
- 1946년, 이화여자대학교 초대 총장
- 1950년, 여학사 협회 창립위원, 초대 위원장
- 1951년, 전시 국민 홍보 외교 동맹 전체 위원장
- 1951년 4월, 대한민국 민간 외교사절
- 1952~54년, 코리아타임즈(The Korea Times) 사장
- 1953년, 유네스코 한국 위원회 집행위원
- 1955년, 대한적십자사 부총재
- 1960년, 금란여자중,금란여자고등학교 재단 이사장
- 1961년, 금란전도협회 조직
- 1961년 9월, 이화여대 정년퇴직, 명예총장 취임. 이화학원 재단 이사장
- 1965~70년, 대한민국 순회대사
- 1969년 3월, 영란여자중,여자상업고등학교 재단 이사장
- 1970년 2월 10일, 당뇨병과 동맥경화 등의 합병증으로 사망.
상훈
- 교육 부문 대한민국장 - 1963년 8월
- 일등수교훈장 - 사후인 1970년에 추서되었다.
친일 행적
김활란은 일제강점기 당시 학생들의 징병·징용을 독려하는 등의 친일 행적으로 지난 2002년 친일파 708인 명단에 선정된 바 있으며 2008년 발간된 <친일인명사전>에도 등재되었다.
이화여대 친일청산 기획단
‘이화여자대학교 친일청산 프로젝트 기획단’(이하 기획단) 소속 학생 10여명은 서울 이화여대 정문에서 ‘김활란 친일행적 알림팻말 세우기 선포식’을 열었다. 기획단 소속 학생들은 기자회견에서 “민족을 배신한 사람은 이화의 ‘큰 스승’이 아니다”라며 “김활란의 친일 행적을 이화인들에게 알리기 위해 친일행적을 적은 알림 팻말을 동상 앞에 세우겠다”고 밝혔다.[4]
출처
- (이 문서는 위키백과의 김활란 문서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