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최근 편집: 2018년 6월 13일 (수) 16:08
Yonghokim (토론 | 기여)님의 2018년 6월 13일 (수) 16:08 판
남미에서 칠레의 위치
남미에서 칠레의 위치

칠레(Chile)는 남미 최남단에 위치한 국가이다.

서쪽으로는 태평양을, 동쪽으로는 안데스 산맥을 두고 북쪽 페루 국경부터 남극해까지 약 4,000km 에 달하는 긴 길이에 동서로는 150km를 넘지 않는 짧은 너비의 특이한 형태의 국토를 가졌다.

수도는 산티아고, 화폐는 페소이며 인구는 1,700만명이다. 남미에서 전통적으로 멕시코, 브라질, 아르젠티나와 함께 경제가 활성화 된 축에 속하고, 남미 국가 중 가장 치안이 안정 되어있으며 부정부패가 적은 나라 중 하나이다. 그러나 독재자 피노체트 시절부터 소위 "시카고 보이즈"로 불리는 시카고 신자유주의 학파를 적극 수용하여 국민의료보험 제도를 비롯한 각종 산업의 민영화가 진행되었다.

수도 산티아고 시내 일부 전경

거의 3,000명의 한인이 칠레에 살고 있으며 상당수가 의류 도매, 소매업에 종사한다. (의류업 이야기는 1990년대 정보) 절반이 넘는 수가 수도 산티아고에 거주하고 있으며, 산티아고의 Comuna Recoleta 내에 위치한 Patronato 동네에 가면 한인이 운영하는 가게, 식당들과 교회, 성당 등이 집중적으로 모여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지리 및 기후

아타카마 사막에 위치한 자연염전
북부 코킴보 시 전경
칠레 중남부
남부의 빙하

남북으로 4,000km 가 이어져있기 때문에 하나의 국토 안에 다양한 기후가 공존한다. 북쪽 아리카 일대는 건조한 사막 기후, 수도 산티아고를 포함한 중부 계곡 지역은 지중해성 기후, 남부는 춥고 비가 많이 오며, 최남단은 빙하의 한랭 등의 기후를 볼 수 있다. 정글 기후는 존재하지 않는다. 북반구와 비교해 남쪽에 위치한 땅이 많지 않은 남반구 땅 중에서 최남단에 위치했기 때문에 메르카토르 도법으로 그려진 지도를 볼 때 특히 그 길다란 형상이 부각된다. 일각에서는 반쯤 부심으로 "칠레는 아메리카 대륙, 오세아니아(이스터 섬), 남극 (남극 칠레령) 이렇게 3개 대륙에 영토가 있는 몇 안 되는 나라이다" 라고 말하기도 한다.

서쪽부터 해안 지역, 해발 0-800m의 해안 산맥, 중간 계곡, 그리고 안데스 산맥의 네가지 주요 요소를 구분하며, 북쪽부터 남쪽까지 이 네가지 지리적 요소가 어떻게 혼합되느냐에 따라 다양한 기후가 형성된다. 전반적으로 태평양 쪽에서 불어오는 습한 구름 바람 때문에 해안 지역과 중간 계곡은 비가 풍부한 편이고, 안데스 서편의 아르헨티나 지역은 구름이 안데스 산맥을 넘어오지 못해 건조한 기후가 유지된다.

칠레 해안 전체가 남극에서 올라와 동쪽으로 회전하는 훔볼트 해류의 영향을 받아 바다가 매우 차며, 더운 지방도 해안은 기후가 선선한 편이다. 차가운 해류 속에 평소에는 훨씬 더 남쪽에서나 볼 수 있는 어패류가 칠레 해안에서만 발견된다.

인종/민족

파일:Familia Ricardo Alvarez Fajardo.jpg
일반 가정
전통 복장을 갖춰 입고 정부의 토지 반환 행사에 참석한 마푸체인

백인원주민의 혼혈인 메스티조가 주류이며, 그 외에 원주민 인구와 사회 상류층을 구성하는 백인층이 있다. "원주민 인구"와 "백인층"이라고 썼지만 사실 수백년 동안 식민지 지배와 이후 교류가 진행되어 온 아메리카 대륙 치고 혼혈이 아닌 이는 보기 힘들며, "백인"이라 하면 백인 비율이 높아 피부가 더 하얗게 보이고, "원주민"이라고 하면 원주민 비율이 더 높은 상황을 지칭한다고 볼 수 있다.

원주민은 북부의 일부 원주민 공동체, 그리고 남부의 마푸체 족이 있다. 마푸체는 스페인 식민 지배에 끝까지 저항하며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으며 칠레 군대와 아르헨 군대에 정복되었지만 아직도 남부 농촌에서 사회를 형성하고 있으며, 계속 활발하게 정부를 대상으로 토지 반환 등의 정치적 요구를 하는 중이다.

백인은 스페인 백인이 대다수이며, 남부에는 19세기 후반과 2차대전을 전후해서 독일을 떠나 칠레에 정착하도록 정부 차원에서 장려한 독일인들이 섞여있으며 독일인만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마을도 존재한다.

북부를 중심으로 20세기 초에 이주해온 중국인 이민자들이 있으며, 한인 인구가 3,000여명 정도 된다. 흑인은 유독 잘 안 보이지 않는 편에 속한다. 어디까지가 어두운 피부의 원주민 혼혈이고 어디까지가 흑인/원주민 혼혈인지도.. 칠레 경제가 40년 넘게 안정적으로 성장함으로써 주변국 (특히 페루)등에서 이민과 일일노동자가 정착하고 있으며, 이들에 대한 차별이 사회적 이슈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언어

스페인어를 쓴다. 스페인 본토도 그렇고 구 식민지 전체에 걸쳐 워낙 먼곳에 위치한 방대한 영토에 스페인어를 도입했기 때문에 지리적 거리, 산맥, 바다 등의 지형지물을 사이에 두고 지역별로 방언이 발달했는데, 칠레는 그 중에서도 상당히 외진 곳에 위치해 있어 칠레 방언은 특히 타 지역 스페인어와 많이 구별된다.

보편적 특징으로 말이 매우 빠른 것과 - 숨쉬는 속도의 한계까지 기관총처럼 단어를 난사하며 말하며, 단어 하나 하나에 강약을 주지 않은채 숨을 최대한 보존하는 형태로 말하기 때문에 더욱 더 빨리 말할 수 있다 - s 발음을 생략하는 버릇이 있다.

그리고 약간 계급적 특징으로 칠레만의 독특한 표현 (cachai, bacán, weón, qué onda)등이 존재하는데 상당수가 가벼운 욕에 수렴하는 표현이라 공식 석상에서는 사용을 꺼리며, 이러한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화자가 서로 친근한 사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나는 가식 없는 인간이다"라는 면도 전달 된다. 칠레인 본인들도 이런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hablar como roto (부랑아처럼 말하는 것)이라 부르며 중산층은 이를 부끄럽게 여긴다. 하지만 감정이 격해질 때는 평소에 감추던 이런 표현이 뛰쳐나오는데, 영화나 드라마 같은데서 주인공이 감정의 어느 한계선을 넘고 나서는 막 이런 표현이 터지는 것이 하나의 클리셰로 자리잡았다. 나름 한국에서 경상도 사투리와 비슷한 포지션인듯.

칠레식 표현을 배워보자!

상당수의 표현들이 자체적으로 험한 표현이거나 발음이 조금 새는 순간 꽤 험한 표현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막 사용하지 말고 일단 설명을 숙지학, 험한 표현 연습은 일단 친한 친구에게 양해를 구하고 해보자.

일부 표현은 칠레뿐만 아니라 남미 타 지역에서 통용되고 있을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무슨 소리인지 도무지 이해를 못 할 것이다.

won/weón: "놈". 칠레식 거친 표현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 용어. 이 단어가 파생한 원래 단어는 욕이기 때문에 발음을 천천히 할 수록 욕 느낌이 나기 때문에 후다닥, 가볍게 발음해줘야 그나마 욕 느낌이 덜 난다. 그래도 욕에서 파생했기 때문에 비슷한 나이대,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나 쓰고 높임말을 쓰는 관계에서는 쓰지 않는다. 공식 단어가 아니기 때문에 이걸 글로 써야 한다면 (문자 메세지나 소설 등에서?) 철자는 기분에 따라 won, weón, wn 정도로 쓴다. 응용해서 hola won (이놈아 안녕?), ¡tá bien grande el won! (야 이놈 키 커진거 보소) 등으로 쓸 수 있다. won은 남성형 명사인데 이걸 여성형 명사(wona)로 바꾸는게 가능하지만, 음절이 하나 더 붙기 때문에 요령있게 발음해야 욕으로 변신을 안 하고 퉁치는게 가능하다. 그냥 다 won 으로 통일하자 요즘 "형"으로 통일하듯이.

po: "그럼". "pues"를 줄인 표현이다. "si" (그래) 대신 "si pues" (당연하지)를 "sipo"로 발음하는 식으로 응용한다. 그외의 응용으로 "nopo" (당연 아님), "cuanto po~" (얼마냐구우우~~), "ya po" (빨리하자구)가 있다. 귀엽게 쓴 변형형으로 poh 가 있다. (약간 귀엽다는 것 말고 별 차이 없다) 깐깐한 중학생 버전으로 sip, nop, yap 등이 있다.

estai, no vayai 등: -ar식 정규형 동사 2인칭 복수(vosotros) 의 estáis, vayais 등에서 끝 글자 s 를 빼서 억지로 2인칭 단수(vos)로 만든 형식으로, usted 는 너무 높임식이고 tú 는 너무 형식적이라 대신 캐쥬얼한 맛과 좀 톡톡 튀는 느낌을 가미한 동사변형이다. 분명 정식 문법에 존재하지 않는 표현인데 사람들이 맨날 쓰다보니 형태를 완전히 외어서 마치 규칙이 존재하는 듯 딱 형태소를 맞춰서 쓴다.

cachai: "알간?". won 과 함께 칠레를 상징하는 표현이다. cachar는 영어 to catch 에서 온 것으로 추정만 되는 정체 불명의 동사인데, 사람들이 -ar식 정규동사변형을 해서 쓴다! 모든 동사 변형이 가능하지만, 그 중에서 cachai 가 제일 인기가 많다. 어떤 복잡한 것에 대해서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풀어준 뒤 cachai? 하면서 은연중에 쉽다는 느낌을 전하면서 쓰이기도 하고, "cachai o no cachai?" (이해가 되기는 하냐?) 면서 좀 더 따지는 스탠스를 취할 수도 있다. 응용해서 "yo cacho que esto está mal" (이거 뭔가 잘 안된 느낌이다)로 쓸수도 있다.

buena onda/mala onda: 직역은 "좋은 분위기/나쁜 분위기". 무언가의 분위기를 설명하고 싶은데 귀찮을 때 주로 사용한다. ¡qué buena onda aquí! (여기 분위기 좋네요!) 라고 쓸 수도 있고, "ese won es medio mala onda po" (그놈은 성격이 좀 괴팍하다구") 등으로도 응용이 가능하다.

onda: 한개의 단어로 설명 불가능한 수수께끼의 표현. "분위기"에 가까운데, onda 를 직역하자면 (물결 등의) 파동으로, 굳이 풀어보자면 분위기가 라디오 전파처럼 이곳저곳에 "송신"되고, 그 분위기를 감지한 것을 onda 라고 해석 할 수 있다. buena onda 외에도 매우 범용적으로 onda 라는 표현이 쓰인다. ¿qué onda? (뭔일이야? 또는 다들 잘 지내고?), ¿qué onda wn? (잘 지내냐 이놈아?) ¿y esa onda? (그 분위기는 또 뭐냐?)등이 있고. 그리고..

상기 모든 onda의 용례에서 벗어나는 표현으로 "onda que" 가 있다. 뭔가를 설명하려다가 표현력이 딸리거나 귀차니즘이 엄습하면 일단 onda 라고 추임새 넣어주고, 1) 다시 설명을 풀어서 하든지 2) 비유를 동원하는데, 그 두 문장을 어떤 접속사로 엮어야 하는지 헷갈리면 onda 로 만병통치가 가능하다. 그리고 que 는 자주 생략해버린다. 예시: Entonces yo cacho que esta weá de la reforma de las ISAPREs no conviene a la gente, cachai? onda cuando se trata de privatización, mejor no tener confianza po. (그러니까 거시기 사립의료보험 개혁이라는 거 그건 사람들에게 불리할 것 같은 느낌이야. 일단 민영화라고 했다 하면 의심을 가지는게 좋을거라구)

weá: "멍청한 짓" 내지는 "그딴 것" 내지는 "거시기". 길게 늘여서 webada 라고 말할수도 있다. 어원적으로 won 과 반쯤 연관되어있다. 문맥에 따라서 눈깔을 치켜세우며 대들면서 말하는 느낌이 난다. 응용해서 "¿qué weá?" (뭔말했노?) "para la weá po" (그딴짓 좀 관두라) "¿y esta weá fome?" (이 짱나는 거시기는 또 뭐야?) 등으로 응용할 수 있다.

al tiro: 금방. tiro 가 총 쏘는 것과 연관이 있는데 그것 때문에 "금방, 순식간" 등의 의미가 붙었다. "Vámono al tiro antes que venga el profe" (선생님 오기 전에 빨리 튀자)

oi!: "어이!" 딱 "어이!" 의 캐쥬얼성을 자랑한다. 사용할 때 "나는 입속에서는 소리를 지르고 있지만 입은 반쯤 다물었기 때문에 소리를 지른 것도 아니지만 살살 말한것도 아니다"식 어정쩡한 소리지르기도 똑같다.

la cagaste: "니가 망친거야". cagar 는 똥을 싸다를 험하게 표현한 것인데, 굳이 의미와의 연관을 따져보자면 "니가 똥을 쌌군" 겸 "그것 똥으로 만들어버렸군" 정도로 볼 수 있다. 응용으로 "no la caguís" (망치지 마), "tai cagao" (너 망했군) 등이 있으며, 대상을 "tú" 대신에 어떤 대상으로 교체해서 써도 의미가 성립가능하다. 단 tú형이 제일 많이 쓰인다.

fome: 재미없다, 짱난다. oye po está fome la wea~ (야 이거 너무 재미없잖아~)

dejar la escoba: 난장판을 벌이다.

demás

a la chuña

caleta

copete

문화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시인 가브리엘라 미스트랄파블로 네루다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호르헤 에드워즈, 곤살로 로하스, 니카노르 파르라가 세르반테스 상을 수상했다.

타 남미 사회와는 다르게 락 음악이 인기가 많다. 락 음악 그룹인 Los Tres 가 칠레가 배출한 최대 흥행 그룹 중 하나이다. 이에 대해 레딧에는 한 칠레인이 "글쎄.. 왜 우리가 락을 좋아할까.. 기후가 춥기도 하고 평소에 화를 삭여두다가 막 폭발해서 그런거 아닌가?" 라는 글을 남겼다.

아옌대 사회주의 정권과 피노체트 군부독재 기간 동안 라틴아메리카의 누에바 칸시온 운동의 많은 음악인 및 그룹들이 배출되었다: Inti-Illimani, Violeta Parra, Los Jaivas, Margot Loyola, Ángel Parra 등. 쿠데타 이후 Víctor Jara 가 군부 병사들에 의해 축구경기장으로 끌려가 거기서 손이 잘리는 등의 고문을 당하다가 총살당한 일화가 있다.

전반적으로 사회에 대한 비판이나 좌파적인 사상을 설파한 문화 및 예술인들이 많다. 파블로 네루다는 칠레 공산당원으로써 상원의원과 대사직을 지냈으며, 공산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다가 이후 아옌데를 지지하며 단일화에 합의한다. 물론 정치에 관심없는 예술인도 있다.

칠레식 빵 Hallulla 와 Marraqueta

음식은 빵, 쌀, 고기, 콩과 옥수수를 필두로 한 채소들을 기본 베이스로 다양한 요리가 존재한다. 북부로 갈수록 페루와 영향을 주고받으며, 남부로 갈수록 뜨거운 국류의 음식이 많다. 독립기념주간에는 전통 음식이라며 EmpanadaHumita 등의 음식을 많이 먹는다.

역사

칠레의 역사는 크게 스페인 조우 이전, 식민지 시대, 독립, 공화국, 피노체트 독재, 민주화 이후로 구분 할 수 있다.

식민지

아타카메뇨 문화 원주민의 정착촌
Toqui Lautaro

스페인 침략자들과 조우하기 전까지는 지역별로 다양한 원주민 사회가 정착 해 살고 있었다. 1500년대에 스페인의 디에고 데 알마그로가 발견 후 페드로 데 발디비아가 현 산티아고의 위치에 처음 정착촌을 세운다. 이후 칠레 전역을 정복하고 통치체제를 설립하지만, 황금 노다지인 북쪽 페루 부왕국령과 비교해 금, 은이 많지 않은 편이었기에 정복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편이었다. 칠레 남부 일대에 살고 있던 마푸체족은 북쪽 부족들보다 더 강경하게 항전했으며, 기습적인 스페인 촌락 습격 및 방화 등의 전술로 300년 넘게 스페인을 괴롭혔다. 칠레 남부의 콘셉시온, 치쟌 등의 도시는 수 차례 마푸체의 기습 공격에 당해 방화 된 후 다시 재건되는 일을 반복했으며, 스페인은 칠레가 독립 할 때까지 콘셉시온 이남을 지배하지 못했다. 마푸체는 지휘 체계가 분산되어 있어 잉카제국을 정복 할 때 처럼 황제를 잡는다고 국가 전체가 무너지는 일은 없었고, 스페인인들이 들여온 말이나 철기 등의 무기를 빠르게 습득해서 전투에 활용했다. 마푸체의 항전을 이끈 리더 중 Caupolicán, Lautaro, Colo-Colo 가 유명했다. (Colo-Colo 는 오늘날 칠레 국내 축구 리그에서 1위를 다투는 팀의 이름이 되었고, Caupolicán 은 상당 수 도시에서 큰 도로의 이름이 되었다.)

300년이 넘는 식민 시대를 거치며 이 지역에는 타 남미 지역과 마찬가지로 몇가지의 인종-계급적 계층이 자리잡게 된다. 스페인 출신 백인들은 독립이 무르익은 시점에서는 스페인 본토 출생 Peninsulares (이베리아 반도에서 출생했다는.. 약간 비하적 뉘앙스도 포함), 칠레 출생 Criollos 으로 나뉘고, 그리고 백인-원주민 혼혈인 Mestizo, 원주민으로 구성되게 된다. 다른 지역에 비해 흑인 비율은 낮은 편이라 흑인과 나머지 혼혈 그룹인 Mulato (흑인-원주민 혼혈), Zambo (흑인-백인 혼혈)에 대한 인식은 많지 않다.

이 시기 확립된 인종·계급적 구분은 독립 초기의 노예 해방 외에는 큰 전환점 없이 현대까지 이어져 왔으며, 아직도 칠레의 정치·경제·예술계 상류층은 백인, 또는 백인 비율이 높은 메스티조가 주도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사회적 계층과 피부의 톤이 어느 정도 연관성을 가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현실에 칠레가 여느 남미 사회보다 더 백인이 섞인 비율이 높다는 점에 기인한 것인지, 아직 볼리비아나 베네수엘라처럼 원주민에 대한 제도적 차별 철폐를 찾는 제도권 정치 세력은 찾아 볼 수 없다.

독립

Bernardo O'Higgins

나폴레옹이 스페인을 정복하고 자신의 형을 스페인 왕으로 세우자 아직 프랑스의 군사력이 닿지 않던 식민지들은 일대에 시끄러워졌다. 독립 정국에서 다양한 계파와 영향력들이 서로 상호작용을 했는데, 이 중에는 criollos 를 낮춰보는 peninsulares 들의 차별적 행보, 유럽 발 계몽주의의 영향, 프랑스 혁명의 경험을 통한 공화국에 대한 갈망, 미국 독립의 선례(그리고 미국과 영국 양국 스페인의 영향력을 줄이고자 남미의 독립운동을 물밑으로 지원했다), 그리고 나폴레옹이 세운 왕을 거부하며 망명중이던 왕족을 다시 왕정에 복귀하고자 하는 등 일부 서로 모순되는 세력들이 포함된다. (왕족 복귀를 표면적으로 내세우며 내부적으로는 독립을 꾀하던 일부 끄리오요들은 마지막까지 왕족 복귀를 표방하며 나폴레옹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스페인 본국과 줄다리기를 하게 된다.)

스페인 재점령군이 마지막으로 패배한 차카부코 전투

칠레를 비롯하여 스페인 식민지 각지에서는 이런 다양한 성향의 끄리오요 백인들이 중심이 되어 독립 선언을 하고, 이후 나폴레옹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스페인 본국에 식민지로의 복귀를 거부한다. 그후 스페인이 군대를 보내 칠레와 페루 등은 재정복당해 3년의 기간 동안 다시 식민지로 기능하게 된다. 칠레의 독립파는 스페인의 군대를 물리치고 독립을 유지한 아르헨티나로 망명하고, 이후 아르헨티나의 군대와 함께 다시 안데스 산맥을 넘어와 칠레, 페루, 볼리비아를 해방한다. 이후 독립파의 수장격인 베르다르도 오히긴스가 칠레의 초대 대통령이 된다.

칠레는 1810년의 첫 독립과 재정복 이후 1818년의 두번째 독립이 있는 셈인데, 독립 기념 행사는 1818년의 독립일인 9월 18일에 열고 있다.

공화국 초기

칠레 정부는 이후 백인 끄리오요들이 지도층이 되어 여러 정당들이 주장하는 정치적 개혁을 거듭하게 된다.

태평양 전쟁의 이키케 해전

19세기 말엽 페루 남부 및 볼리비아 해안 일대의 해변과 섬들에 수백년간 쌓인 새 똥(구아노)이 고효율의 비료로 쓰일 수 있으며 아울러 인근에서 화약 제작에 쓰이는 초석이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자, 이를 둘러싸고 페루·볼리비아 연합과 칠레 사이의 영토 분쟁으로 전쟁이 벌어졌다. 전쟁 당사국들은 이 전쟁을 태평양 전쟁이라고 부른다. 침략 전쟁을 시작하고 승리한 칠레는 현재의 제1주, 제2주, 제3주에 해당하는 영토를 페루와 볼리비아에게서 빼앗았다. 이 전쟁을 통해 볼리비아는 유일한 해안 지역을 잃고 내륙국이 되었으며, 칠레는 구아노와 초석의 수출로 엄청난 부를 쌓았다. 이후 독일에서 대체제인 암모니아를 화학적으로 제조하기 시작하면서 구아노의 인기는 시들해졌으나, 이 일대에서 다시 대규모의 구리가 발견 되 당시 태동하던 전기의 도입과 맞물려, 전선의 재료인 구리 수출을 기반으로 다시 엄청난 호황을 누렸다. 칠레의 경제는 이후 구리 수출을 중심으로 재편되었으며, 구리 관련 산업이 국가 경제의 80%에 달했던 때도 있다. 이 전쟁으로 인한 악감정은 아직도 남아있으며, 전쟁 이후 빈국으로 전락하고 해안마저 박탈당한 볼리비아는 현재까지 바다에 맞닿는 영토의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한편 아르헨티나는 전쟁의 막바지에 접어들던 칠레를 대상으로 당시 아직 영유권 주장이 모호하고 마푸체가 실질 지배중이던 남단 지역 - 파타고니아 - 에 대해 협약을 맺을 것을 요구한다. 페루 침공 때문에 군사력이 남지 않고 파타고니아가 경제적 가치가 없다고 보던 칠레 정부는 마젤란 해협만 남기고 안데스 산맥 동쪽을 아르헨티나의 영토로 인정하는 협약을 맺는다. 수십년 후 이 지역에서 석유가 발견되어 엄청난 경제적 이득을 창출하자 칠레에서는 "당시에 칠레가 이 지역의 영유권을 주장하기에는 힘이 딸렸지만 좀 아깝다"라는 시선으로 보고 있다.

살바도르 아옌데

아옌데 후보를 지지하는 노조 시위

1970년대 들어 칠레는 가장 큰 정치적 실험과 바로 이어 칠레 국민을 완전히 갈라놓은 20년에 걸친 비극을 시작하게 된다.

피노체트

민주화

정부

La Moneda 대통령궁
발파라이소에 위치한 국회의사당

칠레의 현행 헌법은 1980년 국민투표를 통해 승인 된 후 피노체트를 쓰러트린 1988년 국민투표 후 미래 헌법 개정 조항을 추가할 수 있도록 수정되었다. 2005년에 라고스 대통령이 의회에서 통과된 몇가지 헌법 수정안을 승인했다. 이들 수정안에는 임명직 상원의원과 상원의원 평생직 제도를 없애고, 대통령이 각 군의 총사령관을 해임 할 수 있는 권한, 그리고 대통령 임기를 기존 6년에서 4년으로 줄이는 안이 포함되었다.

칠레의 국회는 상원 38석 및 하원 120석으로 구성되어있다. 상원의원의 임기는 8년이며 4년마다 절반을 선출한다. 하원의원의 임기는 4년이다. 마지막 국회 선거는 2013년 11월 17일에 열렸다. 2018년 현재 상원의 집권 연립 여당은 21석을 얻고 있으며, 연립 야당이 15석, 무소속이 2석이다. 하원의 경우 집권 연립 여당이 67석, 연립 야당이 48석, 군소정당 및 무소속이 5석이다. 국회의사당은 대통령궁이 위치한 수도 산티아고에서 140km 떨어진 발파라이소 시에 위치 해 있다.

칠레 한국대사관 참사관 미성년자 성추행 사건

칠레 주재 한국대사관 박 모 참사관이 2016년에 칠레의 미성년자들에게 성추행을 일삼았다는 사실이 발견되어 칠레의 시사 고발 TV 프로그램에서 함정 취재를 진행했는데 거기서 성추행 모습이 찍혀 칠레에서 이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