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미리사(車美理士, 1878년 8월 21일 ~ 1955년 6월 1일)는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교육자, 기독교 운동가, 여성운동가 및 사회사업가이다. 배화학당(배화여자고등학교의 전신)의 교사로 활동하였고, 덕성여자대학,덕성여고, 덕성여중의 전신인 근화여학교의 창설자이다.[1]
생애
차미리사는 교육자로 민족계몽운동에 앞장섰다. 남편이 사망한 뒤 기독교로 입교하여 학업에 열중했다. 중국 유학에 이어 미국에서 [[[대동교육회]] 조직, 대동신문 발행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귀국한 뒤에는 배화학교 교사, 사감을 했고, [[종교교육회]에서 여자 야학강습소 설치, 조선여자교육회 조직, 근화학원 설립, 근우회 발기인으로 참여하며 민족의식과 여성애국계몽에 힘썼다. 덕성여자대학과 근화여자실업학교의 창설자이다.
약력
서훈으로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페미니스트로써
같이 보기
- EBS <역사채널e> - 조선 여성에게 새 생명을, 차미리사
- 국가보훈처에 소개된 차미리사의 업적
- 덕성여자고등학교에 소개 된 차마리사의 업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