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지하

최근 편집: 2021년 7월 27일 (화) 12:48
Larodi (토론 | 기여)님의 2021년 7월 27일 (화) 12:48 판 (→‎으랏파파)

감히 너희가 나를 기억하기보다는, 너네는 그냥 나를 외워야 될 거야. 모든 역사적 사건처럼.

2000년대 초반부터 활동해온 퀴어 아티스트. 앨범발매, 전시, 영상, 웹소설, 팟캐스트, 행사MC 등 다양한 일을 하고 있다. 현재는 팟캐스트 영혼의 노숙자의 코너 월간 이반지하에 출연중이며 고해성사와 고민상담 컨텐츠를 진행중이며 유튜브에서 24절기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재치와 위트로 무장한 입담이 그의 주무기다.

이반지하라는 이름은 반지하에서 작업했기 때문에 지은 이름으로, 막 지었다고 한다.[1]

생애

대학 생활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처음 페미니즘을 접한 시기, 학문적인 글을 잘 쓰지 못하는 것 같아 좌절감을 느꼈다. 자신만의 언어가 따로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한다.[1]

대학 노래패 활동도 했다. 노래패가 창작곡을 만드는 것을 중시했고 이반지하가 보컬이었기 때문에 기타를 칠 줄 알아야 했으므로 이때 코드를 따는 등의 기초적인 작곡 기술을 습득했다고 한다. 노래패 활동은 노래패 내부에서 성폭력 사건이 두 번 정도 발생한 이후에 그만두었다.[1]

졸업 작품으로 남성 성기와 그것이 사회적으로 의미하는 것들을 자르는 관객 참여형 퍼포먼스 작품을 기획하고 제작했다. 그러나 창작물이 검열을 당하며 졸업이 거부되었다. 부당한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6개월 동안 작품을 다시 만들었다. 학교 작업실을 쓸 수 없어 홍대 반지하 방을 빌려서 레즈비언 관계에 대한 작품을 제작했고, 이 작품은 통과되어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 이반지하는 이에 대해 '작품을 이해 못한 건지 통과시켜 주더라'라고 농담조로 회상했다. 이 시기 반지하 방에서 만들었던 첫 곡이 '비운의 비투비'이다.[1]

정체화

이반지하는 10대 때 자신을 이성애자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2003년-2004년쯤 성정체성으로 인한 파도가 일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관련 문화에 빠져들었고, 노래도 만들게 되었다.[1]

공백기

더 이상 공연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누가 비용을 제공하는 것도 아닌 데다 섭외처인 퀴어 단체들의 재정이 좋지 못했으므로 적정한 공연비를 지급받지 못한 반면 퍼포먼스는 매번 새로워야 한다는 점에서 신곡에 대한 질문도 스트레스로 다가왔다고.[1]

또한 이 시기는 예술가로서의 성장통이기도 했다. 사람들의 평가와 이야기가 두려웠고 그러한 피드백을 정돈해서 받아들일 수 있는 역량이 되지 않았다고 여겼던 것이다.[1]

"퀴어로 살면서 이런 이중 정체성은 필수불가결한 것이었다는 생각도 들어요."[1]

게다가 전업 작가나 예술가로 성공한다는 것은 커밍아웃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김소윤과 이반지하를 분리하고자 하기도 했다. 또한 이 사회가 이반지하를 제대로 소비할 수 없다고 생각해 기록을 남기는 데에도 부정적이었다.[1]

정체성/가치관

'이반지하'는 '부캐'와 같은 어떤 캐릭터나, 계획된 프로젝트가 아니다.[1]

그냥 나로 사는 건데 퀴어로 산다는 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운동적 측면을 갖게 되더라고요. 그래도 저는 마음대로 살 거예요. 그게 포인트예요. 그냥 끝까지 재밌게 살고 싶어요.[2]

그냥 누군가는 이런 삶을 살고 있다’는 거예요.[1]

김소윤은 현대미술가로, 이반지하는 퀴어 퍼포머로 분리했던 적이 있었다.[2] 그러나 지금 이반지하에게 이반지하는 김소윤이고, 김소윤은 이반지하다. 이반지하에게 이반지하는 김소윤 자신이면서 김소윤의 작품이다.[1]

활동

음악 활동

2019년 이전

노래패 활동을 하면서 만든 자작곡을 당시 퀴어문화축제에서 일하던 친구가 듣게 되면서[2] 2004년 퀴어문화축제 공식파티에서 데뷔했다. 활동 초기에는 이반지하라는 활동명도 오래 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공연도 장난스럽게 했다고 한다. 그러나 몇 번의 공연을 거치면서 이반지하가 그냥 가수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고, 2013년 앨범 작업을 하면서 MR 덕에 기타로부터 해방되면서 좀더 퍼포먼스적이고 현대미술적인 모습으로 변화하는 계기가 되었다.[1]

2017년 리드마이립스(READ MY LIPS) 전시에서도 퍼포먼스 공연을 했다. 이 때부터 노출을 많이 하기 시작했으며 성기를 연상시키는 소품도 사용했다. 이반지하는 이때 자신에게 맞는 방식을 찾은 것 같아서 좋았다고 회고한다.[1]

공백기

여러 가지 이유로 공연을 쉬었다. 2013년 앨범을 내는 과정이 너무 힘들기도 했고, 할 것을 다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1]

2019년 이후

이반지하가 잊혀지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든 거예요. ‘내 업적인데 잊혀지면 어떻게 하지’라는 의미가 아니라, 이반지하의 활동이 기록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처음 페미니즘을 접했을 때, 페미니스트 미술가들과 그들의 업적을 찾는 게 힘들었거든요. 자료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찾기 어려웠어요. 가부장제 사회가 소수자를 기록하지 않기 때문이죠. 아마추어적이라는 것부터 이유야 여러 가지에요. 퀴어예술도 그렇더라고요. 제 다음 세대들이 퀴어미술, 퀴어아트가 없다고 말하는 걸 보고 좀 충격을 받았어요. 기록이 없으니까 또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구나 싶어서 ‘이러면 안 되겠다, 내가 이반지하를 다시 한번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1]

2018년에 세상에 대한 짜증이 폭발했고, 이반지하와 김소윤의 정체성을 통합했다. 또한 이반지하의 활동이 기록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 후 자신이 이반지하를 다시 한 번 정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때 콘서트 기획과 음원 관련 서류 작업 등의 믿고 맡길 수 있고 이반지하라는 존재를 잘 이해하고 있는 리타를 만나게 되었다.[1]

이러한 상황들이 맞물리면서 2019년 디지털 음원을 발매하고 연말에 이반지하 <최초마지막단독인권콘서트>를 열게 되었다. 자신의 팬들과 한국의 퀴어 예술에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책임이 있었다고 한다.[1]

2019년 콘서트 티저 영상을 보면 ‘위대한 책임이 온다’는 말이 나와요. 그 책임이라는 게 그런 의미에요. 내가 이반지하를 만들었고, 그가 사랑 받은 것에 대한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는 생각이었죠. 디지털 음원을 내고 콘서트를 하자. 그리고 모든 활동을 종료하자고. 저는 항상 끝내는 걸 생각해요.[1]

이반지하 활동이라는 게 그래요. 항상 최후라고 생각하고 하는 수밖에 없어요. 뭐가 담보되어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2019년 콘서트가 중요했어요.[1]

이반지하는 2019년 콘서트를 기점으로 이반지하라는 이름에 본명 김소윤을 병기하고 있다.[2]

곡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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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월간 이반지하

2020년부터 셀럽 맷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영혼의 노숙자에서 한 달에 한 번 청취자들의 고민과 고해성사를 들어주는 '월간 이반지하'를 함께하고 있다.[1]

클럽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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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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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2003년, 여성의 몸을 훼손하는 사진으로 유명한 아라키 전시가 일민미술관에서 개최된 것을 비판하며, 젊은 페미니스트 작가들과 함께 <안티아라키전>을 열었다.[1]

저술

오늘은 투데이

리디셀렉트에서 매주 화요일에 에세이 <이반지하의 '오늘은 투데이'>를 연재한다.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

2021년 7월, 자신의 글과 그림 작품, 팟캐스트 어록을 수록한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를 출간했다.

언니에게 보내는 행운의 편지

2021년 6월 29일부터 시작된 뉴스레터 언니에게 보내는 행운의 편지에서 집필진으로 참여하고 있다.

웹소설

다시 한번 플라워

네이버 시리즈에서 웹소설 <다시 한번 플라워>를 연재한다.[1]

유튜브채널

개인 유튜브 채널인 IBANJIHA에서 라이브 방송, 브이로그 등의 컨텐츠 활동을 하고 있다.

드라마

으랏파파

미국 시트콤 '심슨 가족' 같은 퀴어 시트콤이 한국에도 하나 있었으면 하는 게 소망입니다. 누구보다 잘 만들 수 있거든요.[2]

퀴어 가족 시트콤 '으랏파파'를 썼다. 김일란 감독이 연출했다. 으랏파파는 이반지하가 작사·작곡하고 부른 노래 '우리가족 LGBT' 같은 시트콤을 만들어보자는 연분홍치마 측 제안에서부터 비롯됐다. 2021년 3월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의 유튜브채널 연분홍TV에 공개됐다.[2]

으랏파파의 가족들은 전부 퀴어이며 작품 속에서는 시스젠더 헤테로가 아니라 퀴어가 디폴트이다. 또한 이반지하는 퀴어물이 '우리 사랑하게 해주세요'가 전부인 현실에 비판의식을 가지고 이 드라마를 썼다. 이반지하는 "이성애 사회가 사랑뿐 아니라 여러 관계와 역할이 얽혀있는 것처럼 퀴어 커뮤니티도 사랑, 연애가 전부가 아니다"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으랏파파 속 캐릭터들은 입체적인 인물들이며, 퀴어 당사자뿐 아니라 이성애자 역시 공감할 부분이 많다.[2]

이반지하는 10대 퀴어 청소년을 항상 웃겨주고 싶었기에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의 10대들이 으랏파파를 보고 좋아했다는 얘기가 가장 듣기 좋았다고 한다. 그는 으랏파파를 통해 10대 퀴어 청소년의 이야기가 주목받고, 다시 그들이 발화하는 연결고리가 되기를 원한다고 한다.[2]

으랏파파는 파일럿으로 3회를 먼저 선보였으며 재정만 넉넉해진다면 시즌제로 제작할 계획이다.[2]

트리비아

'언니'라는 호칭을 못견뎌한다. 언니라는 호명의 순간 호명의 대상자와 자신이 여자가 되어 버리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그래서 '형님'이라는 표현을 선호하는데, 이는 자신의 성관념이 대단히 비뚤어져서가 아니라 세상이 너무 언니를 여자로 만들었던 탓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3]

명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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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