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우옌 반 뚜언 사망 사건은 2026년 3월 10일 새벽 경기도 이천시 호법면의 자갈 가공업체 중앙산업에서 베트남 국적의 이주노동자 응우옌 반 뚜언(23)이 가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사건이다. 유족과 이주노동단체는 3월 18일 사업주와 법인을 고소·고발했고, 중앙산업은 4월 17일 유족과 내국인과 차별 없는 배·보상, 공식 사과, 재발 방지를 담은 합의문을 작성했다. 사고를 계기로 고용노동부가 고용허가제로 연결한 사업장을 한 번도 점검하지 않은 점도 문제가 되었다.
사고
응우옌 반 뚜언은 베트남 응에안성 출신으로, 2023년 8월 고용허가제의 E-9 비자로 입국해 2024년 5월부터 중앙산업에서 컨베이어벨트 가동을 관리하는 일을 했다.[주 1] 중앙산업은 이천시 호법면에서 암석을 캐고 부수어 건설현장에 쓰는 자갈을 만드는 골재 공장으로, 직원 15명 가운데 3명이 베트남 노동자였다. 응우옌 반 뚜언은 최저임금을 받으며 주·야 맞교대로 하루 12시간(휴게시간 1시간 포함) 일했고, 공장 안 기숙사에서 지냈다.[4]
3월 10일은 응우옌 반 뚜언이 야간조로 일하는 날이었다. 사고 초기 과정을 조사한 경기이주평등연대에 따르면 이 공장의 야간조는 원래 3인 1조지만, 2월 말 퇴사한 직원의 자리가 채워지지 않아 사고 당일에는 2명뿐이었다. 새벽 2시 30분쯤 컨베이어벨트에 과부하가 걸렸다는 상사의 지시를 받은 응우옌 반 뚜언은 이물질을 치우려고 삽을 들고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 아래로 혼자 들어갔다. 8분쯤 뒤 관제 모니터에 다시 과부하 신호가 떴을 때, 벨트 아래에 응우옌 반 뚜언과 삽이 함께 끼어 있었다.[4][주 2]
뉴스타파가 사고 나흘 뒤인 3월 14일 찍은 공장 안에는 사람의 접근을 막는 방호울이나 덮개, 비상정지장치, 위험 구역을 비추는 CCTV, 외국어로 된 안전표지판이 없었다.[4] 동료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 공장에서는 컨베이어벨트에 돌이나 흙이 걸리면 가동 중인 기계 밑으로 들어가 에어건을 쏘거나 삽으로 치우는 작업이 관행처럼 이어졌다.[4] 이주노동법률센터 소금꽃나무의 이용덕 활동가는 응우옌 반 뚜언의 동료 한 명도 이 공장에서 일하다 손가락이 부러졌으나 산재 처리 없이 2주 만에 다시 일했다고 밝혔다.[4] 경향신문은 동료들이 2024년 11월에도 이 공장에서 굴착기에 손이 치여 손가락 2개가 부러지는 사고가 있었으며 사측이 산업재해로 처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고 전했다.[5]
노동부 감독 공백
이천 고용센터 관계자는 사업장의 안전 조치 여부가 고용허가의 필수 요건이 아니며, 무작위로 일부 사업장을 골라 감독하는 방식으로 안전을 관리한다고 설명했다.[4] 뉴스타파 취재에 따르면 노동부는 중앙산업에 이주노동자를 배치한 뒤 지도·점검을 한 번도 나가지 않았고 점검 계획도 세우지 않았으며, 지난 10년간 일반 근로감독도 하지 않았다.[4] 노동부 외국인력담당관실 관계자는 1년에 사업장 3000곳을 점검하지만 이는 전체 외국인 고용 사업장 약 6만 곳의 5% 안팎이어서 모든 사업장을 감독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4] 2026년 1월 대법원은 2020년 12월 경기도 포천시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숨진 캄보디아 노동자의 유족이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담당 근로감독관이 사업장을 한 번도 점검하지 않고 점검 계획도 세우지 않은 것은 법령 위반이라며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다.[4]
작업중지 명령과 현장 보존
성남지방고용노동청 성남지청은 사고 초기에 응우옌 반 뚜언이 숨진 5라인 컨베이어벨트에만 작업중지 명령을 내렸다가, 이주노동단체의 항의 뒤 컨베이어벨트 사용 작업 일체로 범위를 넓혔다. 성남지청 관계자는 단체의 항의를 받고 넓힌 것은 아니고, 상부에서 유사 설비에 전면 중지를 하는 것이 지침에 맞다고 해 넓혔다고 밝혔다.[4]
사고 다음 날인 3월 11일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와 경인일보 기자가 방문했을 때 사고 현장은 누구나 들어갈 수 있게 열려 있었고 폴리스라인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성남지청은 현장 통제가 법적 의무가 아니며 초동조사를 마쳐 수사에 영향이 없다는 입장이었다. 유족을 대리한 민변 이환춘 변호사는 현장보존이 적어도 작업중지 기간에는 유지되어야 하며, 이주노동자 사업장이라고 소홀히 대한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고 밝혔다.[4]
항의와 고소·고발
3월 12일 경기이주평등연대와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등은 경기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집회를 열고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이 자리에서 이용덕 활동가는 사고 현장의 컨베이어벨트에 비상 스위치, 자동 정지 장치, 덮개가 없었고 2인 1조 수칙도 지켜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6] 3월 17일에는 전국 100여 개 이주노동인권단체가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반복되는 이주노동자 중대재해를 막을 근본 대책을 정부에 촉구했다.[4]
3월 18일 유족과 이주노동단체는 경기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뒤 중앙산업 사업주와 법인을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고소·고발했다. 기자회견에는 2018년 12월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김용균의 어머니이자 김용균재단 대표인 김미숙이 참석했다. 김미숙은 혼자 가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들어간 것, 안전 덮개가 없었던 것, 기계를 멈출 동료가 없었던 것이 아들의 사고와 같다며 참담하다고 말했다.[4]
유족은 사고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대책, 내국인과 차별 없는 배·보상, 공개 사과를 사측에 요구했다.[4]
3월 19일 이천 지역 진보정당과 시민단체는 이천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주노동자의 안전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7]
수사
경찰은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중앙산업 관계자 3명을 입건했다. 3월 20일 노동부와 합동으로 현장조사를 벌였고, 사고 당시 기계가 작동 중이었고 응우옌 반 뚜언이 혼자 작업했다는 관계자 진술을 확보했다.[8]
노동부 성남지청 중대재해수사과는 고소장을 접수하고 참고인 조사를 진행했으나 3월 26일까지 입건한 관계자가 없었다. 경인일보는 노동부가 중앙산업의 과거 감독 이력을 수사의 핵심 단서로 들여다보지 않는다는 우려를 전했다.[8] 성남지청은 3월 30일 중앙산업 대표이사와 법인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를 함께 조사하는 가운데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를 먼저 적용했다고 한다.[9]
유족을 대리한 장혜진 노무사는 4월 초 인터뷰에서 이 사고에는 특별근로감독도 압수수색도 없었다며 노동부가 이 사업장의 문제를 무게감 있게 조사하는지 의문이라고 밝혔다.[10]
장례와 송환
빈소는 경기의료원 이천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4] 유족을 대리한 활동가들은 사측의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하며 발인을 미뤄 왔으나, 아들의 유골이라도 보고 싶다는 유족의 요청에 따라 3월 19일 사고 9일 만에 발인했다. 유족은 베트남 장례문화에 따라 시신을 그대로 송환받기를 원했으나 시신의 훼손이 심해 화장하기로 했고, 화장은 경기도 용인 평온의 숲에서 치러졌다.[4]
유골은 3월 20~21일 베트남으로 옮겨졌다.[주 3] 근로복지공단은 유해를 모시러 한국을 찾은 유족의 입국과 출국을 지원하는 산재 사망 이주노동자 예우 사업을 이 사건에 처음 진행했다.[2] 박종길 이사장은 유족급여와 장례비 등 산재보험급여를 신속히 지급하겠다고 밝혔다.[2]
합의
유족 대리인 장혜진 노무사는 사측이 처음에는 잘못을 인정하며 고개를 숙였으나 로펌을 선임한 날부터 태도가 달라졌고, 유족급여 산정에 필요한 임금명세서와 출퇴근 기록부도 주지 않았다고 밝혔다.[4]
4월 17일 유족과 유족 대리인단은 중앙산업 대표이사와 공장장 등을 만나 합의문을 작성했다. 이 자리에서 대표이사 명의의 사과문이 전달되었다. 합의문에는 내국인(정주 노동자)과 차별 없는 배·보상, 유족에 대한 공식 사과, 안전관리 체계 개선을 통한 재발 방지가 담겼다. 사고 38일 만의 합의였다.[1]
경기이주평등연대는 이번 합의의 내국인과 차별 없는 배·보상이 그동안 이주노동자의 산재 사망 배상금을 정할 때 한국에서 번 소득은 남은 비자 기간만 적용하고 그 뒤로는 임금 수준이 낮은 본국을 기준으로 삼던 관행을 넘어섰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평했다. 이 단체는 이번 사건에서 고용허가제 사업장에 대한 점검과 관리의 부실이 다시 확인되었다며 모든 고용허가제 사업장에 근로감독을 실시하고 중소 사업장의 안전관리 감독을 강화하라고 정부에 요구했다.[1]
이후
유족을 대표한 고인의 동생이 4월 9일 한국에 입국해 사고 한 달째인 10일 사고가 난 작업장을 찾았다. 김미숙이 동행했다.[12]
6월 9일 경기도의회는 전국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처음으로 산업재해로 사망한 외국인 노동자의 유족을 지원하는 조례안을 의결했다. 이 조례안은 이 사건에서 국내에 직계 가족이 없어 수사에 필요한 부검 의사를 묻는 통상 절차도 생략되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13]
부연 설명
- ↑ 한글 표기는 외래어 표기법에 따랐다. 언론에서는 대부분 뚜안이라고 불렀고, 성과 가운데 이름은 오마이뉴스가 응웬 반[1], 매일노동뉴스가 응엔 반[2]으로 적었다. 앞서 대구에서 단속을 피하다 숨진 뚜안 사망 사건의 사망자와는 한글 표기가 같지만 다른 사람이다.[3]
- ↑ 여성신문과 경향신문은 사고 시각을 오전 2시 40분쯤으로 적었다.[3][5] 경향신문은 동료들이 뒤늦게 발견해 병원으로 옮겼으나 끝내 숨졌다고 전했다.[5]
- ↑ 경향신문은 발인 날인 19일 기사에서 20일 오후 6시 5분 인천발 하노이행 비행기로 옮겨진다고 전했고,[11] 뉴스타파는 기사 앞부분에서 20일에 귀국했다고, 본문에서는 21일 오후 6시 5분 인천발 하노이행 비행기로 옮겨졌다고 적었다.[4] 매일노동뉴스는 근로복지공단이 20일에 유족의 귀향을 지원했다고 전했다.[2]
출처
- ↑ 1.0 1.1 1.2 박성우 (2026년 4월 20일). “"내국인과 차별 없이 보상" 고 뚜안 유족, 사고 발생 38일 만에 합의”. 《오마이뉴스》. 2026년 10월 29일에 확인함.
- ↑ 2.0 2.1 2.2 2.3 강한님 기자 (2026년 3월 22일). “산재사망 이주노동자 첫 ‘예우 사업’”. 《매일노동뉴스》. 2026년 10월 29일에 확인함.
- ↑ 3.0 3.1 신선진 기자 (2026년 3월 12일). “여덟 식구 생계 책임진 23세 뚜안… 홀로 컨베이어벨트 점검하다 끼임 사고로 숨져”. 《여성신문》. 2026년 10월 29일에 확인함.
- ↑ 4.00 4.01 4.02 4.03 4.04 4.05 4.06 4.07 4.08 4.09 4.10 4.11 4.12 4.13 4.14 4.15 4.16 4.17 홍여진 (2026년 3월 24일). “국가가 허가한 일터에서 스물셋 청년이 죽었다”. 《뉴스타파》. 2026년 10월 29일에 확인함.
- ↑ 5.0 5.1 5.2 “[단독]“23살 베트남 노동자 숨진 이천 공장, 전에도 안전사고 있었지만 사측이 은폐””. 《경향신문》. 2026년 3월 11일. 2026년 10월 29일에 확인함.
- ↑ “안전장치 없이 혼자 일하다 숨진 23살 뚜안···“일곱 가족 책임진 장남 죽음에 하늘 무너져””. 《경향신문》. 2026년 3월 12일. 2026년 10월 29일에 확인함.
- ↑ ““안전도 차별하는 세상…당신의 꿈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요””. 《경향신문》. 2026년 3월 19일. 2026년 10월 29일에 확인함.
- ↑ 8.0 8.1 유혜연 기자 (2026년 3월 26일). “뚜안 숨지고 보름째, 관계자 입건 없어… 과거 노동부 관리 부실도 살펴야”. 《경인일보》. 2026년 10월 29일에 확인함.
- ↑ 유혜연 기자 (2026년 4월 2일). “뚜안씨 사고, 중앙산업 대표 산안법 입건… 경영책임자 처벌로 이어질까”. 《경인일보》. 2026년 10월 29일에 확인함.
- ↑ “이용덕 소금꽃나무 활동가 “반복되는 이주노동자 산재 사망은 구조적 살인””. 《경향신문》. 2026년 4월 9일. 2026년 10월 29일에 확인함.
- ↑ “끼임사고로 숨진 23살 청년 뚜안의 마지막 길···“이주노동자에게도 안전권을””. 《경향신문》. 2026년 3월 19일. 2026년 10월 29일에 확인함.
- ↑ “‘컨베이어 벨트 끼임 사고’ 뚜안 유족 “이주노동자들의 죽음 반복되지 않게 해달라””. 《경향신문》. 2026년 4월 10일. 2026년 10월 29일에 확인함.
- ↑ 유혜연 기자 (2026년 6월 9일). “경기도의회, 전국 첫 ‘외국인 노동자 유족 지원’ 조례 의결”. 《경인일보》. 2026년 10월 29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