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푸친 원숭이 실험

최근 편집: 2018년 8월 4일 (토) 21:40

척추동물을 연구하는 [[영장류학|영장류학자]인 프란스 드발(Frans B. M. de Waal)과 세라 브로스넌(Sarah F. Brosnan)이 카푸친 원숭이를 대상으로 실험한 공정성에 대한 연구이자 2003년 네이처에 실린 논문의 실험 내용으로 논문의 제목은 '원숭이들이 불평등한 보수를 거부하다(Monkeys reject unequal pay)이다.[1]

실험내용

카푸친 원숭이 두 마리에게 동일한 과제를 수행하게 하고, 과제를 완료하면 오이와 포도를 보상으로 준다. 이 때 실험을 진행하는 환경은 두 원숭이는 각각 다른 우리에 들어가 있지만 두 우리는 붙어있고 투명하기 때문에 서로를 확인하고 볼 수 있다는 것을 설정한다.

두 마리 모두에게 오이를 줄 때는 별 문제가 없다. 그러나 같은 과제를 수행하고 한 마리에게는 오이를 주고 다른 한 마리에게는 포도를 주게 되면 흥미로운 결과가 관찰된다. 일반적으로 원숭이에게 오이는 수분만 가득한 맛없는 것이고 포도는 아주 선호한다. 오이를 받은 원숭이는 다른 원숭이에게만 포도를 주자 어느 순간 받은 오이를 먹지 않고 실험자에게 던져버린다. 같은 실험을 여러번 반복해도 오이를 받은 원숭이는 같은 행동을 보였다.

실험의 의의

이 실험은 영장류가 '공정성'과 '평등', '불평등'의 개념을 인지하고 있음을 증명했다. 이 후 이런 형태의 실험이 다양하게 진행되어 조류, 침팬지 등을 대상으로도 많은 실험이 진행되었다.

비슷한 형태의 실험으로 원숭이도 화폐를 사용한다는 것을 밝힌 키스 첸의 원숭이 연구[2]가 있다.

실험결과에 대한 다양한 해석

드 발 교수의 해석

드 발 교수는 이 실험을 월가 시위와 비교하기도 했다. 오이만 먹고 불평등을 겪는 원숭이만 긴장과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아니라, 포도를 받은 원숭이도 마찬가지로 힘든 상황에 놓인다고 설명했다. 이는 월 가에서 막대한 인센티브금융자본과 금융산업으로 엄청난 수익을 올리는 사람들도 심적 부담이 상당하다는 것과 연관된다. 드 발 교수는 이를 두고 '거액의 보너스를 받는 금융가들처럼 포도만 받아먹은 원숭이도 상대의 분노를 견뎌야 하는 힘든 상황에 놓이게 만든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영장류는 동료가 포도를 받지 못하면 자기도 포도를 거부하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고 밝혔다.

드 발 교수는 이런 인식이 인류침팬지의 조상이 갈라지기 훨씬 전부터 에 입력돼 있으며 "뇌의 매우 오래 된 부분이 도덕적 결정에 관여한다"는 신경학적 증거로 입증된다고 밝혔다. 그는 또 까마귀, , 코끼리에서도 평등 의식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생물학자들의 연구로 계속 입증되고 있다고 덧붙였다.[3]

하종강 교수의 해석

  • "정의감은 학습의 결과가 아니라 진화돼온 본능적 특성"[주 1]
  • "평등은 경제 성장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고, 불평등은 경제성장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최근 몇년간 거시경제학 분야의 중요한 연구성과입니다. 경제를 연구하는 사람이 그것을 몰랐다면 무식한 것이요, 알면서도 그렇게 말했다면 비겁한 것입니다."[4]
  • 평등을 지향하는 도덕률이 사회에 확립된 것은 인류가 오랜 역사 진화 과정 속에서 그 원칙들을 지키는 것이 인류 공동체의 유지 발전에 유익하다는 것을 체득했기 때문입니다.[주 2]

다른 해석들

어떤 철학자와 종교학자들은 이 실험의 결과를 공정성이나 평등의 개념으로 해석하지 않기도 한다.[5](이 부분에 대한 정보 있으신 분 추가해주세요 :) 제가 기억하는 바로는 어떤 철학자가 평등은 프랑스혁명 때 발생한 것이니 원숭이에게 그런게 있는건 불가능하다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어디서 누구에게 나온 이야기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같이 보기

부연 설명

  1. 한편 이러한 설명은 본성과 양육에 대한 잘못된 이분법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으니 주의하자.
  2. 사실 어떤 도덕률이 진화의 결과이건 학습의 결과이건 그 도덕률이 옳고 그르고를 결정하는 근거는 아니다. 진화된 심리 메커니즘이 현대 사회에서 도덕적으로 올바른 경우에만 해당 본능이 정당화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강간 행위 또한 진화된 적응일 가능성이 있는데 아무도 이를 두고 강간이 정당할 가능성을 주장하지 않는다.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