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K-47

최근 편집: 2022년 12월 3일 (토)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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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 – 1955 사이 생산품(Type 2), 총검을 장착한 모습

АК(Автомат Калашникова)-47소비에트 연방(소련)에서 1947년에 개발한 자동소총이자 칼라시니코프 계열 총기의 한 종류이다.

제원

  • 설계자: 미하일 칼라시니코프
  • 개발년도: 1947
  • 생산: 이즈마시 조병창 (현 칼라시니코프 조병창)
  • 생산년도: 1949 ~ 1959 (소비에트 연방 기준)
  • 사용년도: 1949 ~ 1980 (소비에트 연방 기준)
  • 중량: 4.3 kg
  • 총신 길이: 880mm
  • 총열 길이: 415mm
  • 사용 탄약: 7.62×39mm M43
  • 장전방식: 가스 작동식, 회전 노리쇠 방식
  • 연사속도: 분당 600 발
  • 탄속: 715 m/s
  • 유효 사정거리: 300m
  • 최대 사정거리: 1,500m

역사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중산층 집안 출신이였던 미하일 칼라시니코프소련군으로 복무하며 나치 독일에 맞서 싸웠는데 그러다가 한 번은 부상을 입고 후방의 군 병원으로 후송된다. 병원에서 마찬가지로 부상을 입고 입원해온 동료 병사들이 입을 모아 '총 괜찮은거 하나만 있었어도…' 하는 이야기를 들은 칼라시니코프는 자신의 공업 학교 출신과 각종 기계공 근무 경력등을 살려 직접 총기를 제작하기로 하였고, 마침 소련군이 새로운 총기를 모집하는 컨테스트에 출품해보았으나 이 때의 시제품은 실패를 기록했다(참고로 이 때 채용된게 PPSh-41). 하지만 적어도 칼라시니코프는 실력을 인정받아 조병창에서 일하게 된다.

종전 후 독일제 무기들에게 화끈하게 데여본 연합국들은 독일의 무기 시스템들을 흡수하느라 바빴고 이는 소련 또한 예외가 아니라서 독일의 군수공장을 그대로 옮겨오거나 기술자들을 초빙(내지 납치)하기도 하는 등 여러 발전을 모색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칼라시니코프가 종래의 M1 개런드, MP40 등의 여러 총기들을 조합하여 만든 시제품이 군부의 주목을 받았고, 몇차례의 개량과 테스트를 거쳐 마침내 1946년 제식 소총으로 채택되었고 1947년 본격적으로 전군에 보급되기 시작하니 이것이 칼라시니코프 자동소총 47호, 즉 AK-47이다.

소련군에서 제식으로 채용된 이후 경기관총 버전인 RPK, 중기관총 버전인 PK 등 AK의 바리에이션이 나오면서 이것들도 소련군의 제식으로 자리잡으면서 AK 시리즈가 더욱 장수하게 되었다. 이들 무기는 말 그대로 AK-47을 조금 손 본 물건이라 AK-47을 쓸줄만 알면 조금만 더 공부하면 다 쓸 수 있는 무기들이라 적극 채용되었기에 가능했던 것.

특징

그 때까지 제작된 다른 총기들에 비해 설계의 허용오차가 큰 편이다. 이 때문에 이물질에 강하고 원활히 작동하는 온도의 범위가 넓다. 또한 움직이는 부품의 갯수가 적어서 고장이 잘 나지 않고 정비하기 쉽다. 신형 총기가 많이 등장한 지금도 AK는 맨손으로 분해할 수 있는 범위가 넓은 편이다. 장행정 가스 피스톤 방식의 연사기구는 무게가 무겁고 작동에 오차가 적어 이러한 특징들을 극대화한다.

높은 신뢰성과 생산성, 쉬운 정비성을 위해 AK-47은 그 시제형인 AK-46보다 정밀성에서 후퇴했다. AR-15처럼 상하부 총몸이 고정핀으로 지탱되며 여닫을 수 있던 시제형과 달리 AK-47은 아랫총몸이 완전히 고정되고 대형 먼지덮개로 내부를 덮는 방식이 되었다. 먼지덮개를 단단히 고정할 수 없기 때문에 가늠자를 눈에 가깝게 부착할 수 없게 되었고 그 결과 조준이 불편하다. 인체공학에 대한 고려도 부족하여 반동제어가 힘들고 재장전이 불편하다. 장전손잡이와 노리쇠뭉치가 별도의 부품인 다른 많은 총들과 달리 AK-47은 장전손잡이가 노리쇠뭉치와 한 덩어리이기 때문이다.

공업 수준이 낮은 국가에서도 만들 수 있는 총이다보니 탄창의 품질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탄창의 주요 부품인 용수철이 공업력의 수준을 보기보다 크게 타는 부품이기 때문이다.

광범위한 보급

소련을 비롯한 공산주의 국가들은 상호 유대를 중시했고 공산권에서는 저작권 개념이 희박했기에 공산국가뿐만 아니라 인접한 제 3세계 국가들에서도 많이 사용되었다. 소련이 붕괴되고 칼라시니코프社가 민영화된 지금은 그렇게까지 싸진 않고, 다만 기존에 AK를 채용했던 군사조직들이 유지·관리 비용상의 이유로 채택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AK-47이 광범위하게 퍼진 결정적인 비결은 대량생산에 높은 수준의 공업력이 필요치 않기 때문에 복제가 용이하다는 것이다. 같은 시기 경쟁했던 M16(AR-15) 소총은 재료에 T7 알루미늄 합금과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이 들어가기 때문에 아무데서나 만들 수 있는 총이 아니었던 반면, AK-47은 재료만 따지면 1~2차 세계대전 총기와 별 차이가 없이 강철과 나무만으로 제작되었으므로 생산에 필요한 사회간접자본이 덜 든다. 심지어는 대장간에서 AK를 제조하기도 한다. 다만 이 경우는 소련이나 중국의 공장에서 생산한 것보다 내구성 등이 떨어진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공산주의 경제를 채택한 소련의 특성 상 값이 매우 저렴한데다 생산에 인프라를 덜 타기 때문에, 냉전기 동구권 지역은 물론이고 제3세계 지역에까지 널리 채용되었다. 2004년 시점에서 세계에는 7천5백만 정의 AK-47이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었다.[1] 서양 군대가 화력을 독점하고 이에 맞서는 전근대 국가 군대나 무장단체 및 원주민이 화승총이나 (창 같은)냉병기를 들고 맞서던 시대가 AK-47의 등장으로써 끝나고, 이들이 낼 수 있는 파괴력의 하한선이 적어도 개인화기 분야에서는 웬만한 강대국의 병사와 크게 다르지 않게 된 것이다.

기타

<AK47>[주 1]의 저자인 래리 커헤너는 AK-47을 일컬어 "진정한 대량살상무기"라고 칭했다. 발언 당시는 미국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 전쟁을 치룬 직후로, 당시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전을 일으킨 명분은 '사담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였다. 그러나 정작 이라크를 점령하고 나니 부시 행정부가 그렇게 주장하던 대량살상무기는 발견되지 않았고, 외려 혼란 상태에 빠진 이라크에서 AK 소총으로 무장한 무장집단들이 AK 소총으로 민간인과 미군을 사살하면서 인명피해가 커진 것을 두고 부시의 전쟁을 비꼰 발언인 것이다.

동시대에 출현해 역시 큰 인기를 끈 M16 돌격소총과 비교하는 이른바 AK-47 vs. M16 놀이가 있다. 그런데 이런 농담 외에도 진짜로 AK-47과 M16을 진지하게 고찰하는 경우도 많다. 영어 위키백과의 AK-47과 M16 비교 문서가 대표적.

해당 총기의 개발자인 미하일 칼라시니코프가 개인 사업으로 보드카를 만들어 이름을 AK-47이라고 붙이기도 했다. 특별판으로 아예 AK-47의 모양을 본뜬 병에 담긴 버전도 축시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부연 설명

  1. 이데아, 2019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