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혐오

최근 편집: 2018년 4월 20일 (금) 12:50
위키요정 (토론 | 기여)님의 2018년 4월 20일 (금) 12:50 판 (비하 표현 예시)

남성 혐오는 여러 의미로 사용된다.

  • 주로 남초 커뮤니티에서 여성혐오의 대칭점으로 제안하는 개념으로서의 남성혐오(misandry) (존재하지 않는 개념)
  • 남성에 대한 혐오감을 뜻하는 어원적(語源的) 의미로서의 남성 혐오

여성혐오의 대칭점으로서의 남성혐오

남성혐오(영어: misandry,미산드리)라는 말은 여성혐오(misogyny)의 대칭점으로 쓰이는 말로 Misandry는 미소지니가 그리스어로 증오한다는 뜻의 미소스(μισέω)의 어근과 여성을 뜻하는 γυνή이 합쳐진 것을 본따 남성을 뜻하는 안드라스를 대신 결합한 말이다. 19세기에 나온 것으로 추측되며 영국의 보수 월간지 <스펙테이터> 1871년 4월호 기사에서 "남성혐오자"라는 말이 사용되었으며, 사전에 처음 등재된것은 1952년 <메리엄-웹스턴 대사전> 11호판이다. 또 프랑스어의 "Misandrie"를 독일어로 "Männerhaß"라고 번역한 것이 1803년에 나타난다.[1]

그러나 사회적인 여성혐오에 대응하는 남성혐오란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주 1] 여성혐오가 사회가 공유하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와 더불어 공고해지고 있는 반면, '남성혐오'라 일컬을 만큼의 체계적이며 제도적인 반감은 존재하지 않는다.

즉, 남성 혐오는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할 수도 없다. 이는 앞으로 사회가 얼마나 평등해지건, 지난 역사와 의식 안의 여성 혐오가 남아있는 한 절대로 바뀔 수 없으며 바뀌어서도 안 되는 진실이다.

사회학자 앨런 G. 존슨에 의하면 여성혐오와 비교될만한 반-남성 이데올로기가 존재하지 않기에 여성혐오와 남성혐오를 비교하는 것은 잘못이다.[2]

이러한 주장은 반-여성적 편견과 반-남성적 편견의 사회적 기반이 다르다는 점, 두 편견이 매우 상이한 귀결을 가져온다는 점을 무시하고 있다. 여성에 분노와 증오는 남성 특권 및 여성 억압의 일부로 여성됨(femaleness) 그 자체를 평가절하하는 여성혐오적 문화에 뿌리를 둔다. 하지만 위 현상에 대응하는 반-남성적 이데올로기가 존재하지 않기에, 여성의 (남성에 대한) 분노는 피억압집단으로서의 경험에서 기인하는 측면이 강하다. --'The Gender Knot' 중에서.[2]

마르크 A. 우엘레 역시 남성혐오에는 여성혐오에 비견될만한 체계적, 역사-초월적, 제도적, 법적 반감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3] 인류학자 데이비드 D. 길모어 또한 남성혐오는 여성혐오에 비해 보편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4][5]

페미니즘 철학자인 윤지영 교수 또한 남근질서에 대한 분노만이 있음을 지적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남성혐오는 없다. 나아가 여혐혐이라는 여성혐오에 대한 혐오도 없다. 단지 남근질서에 대한 분노(indignation), 여성혐오에 대한 분노만이 있을 뿐이다. 혐오는 하위 계급자들을 향한 파토스로 기존 질서의 부조리를 재생산하는 방식이자 기존의 자리와 위치를 그대로 보존하는 방식이라면, 분노는 상위 계급자들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마저 뒤흔들어놓는 파토스로서 어떠한 것도 안전하고 안온하게 보전하려하지 않는 급진성을 띤다. 즉 여성혐오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와 일상의 배치방식 자체를 탈구하는 것은 기존질서의 보존에 기여하는 혐오라는 파토스의 연장으로 결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6]

여성혐오에 대한 대칭점으로서의 '남성혐오'가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말하는 사례는 다음과 같다.

  • 재범오빠 찌X파티
  • 남자는 키가 180가 넘어야지 (혹은 남자는 재산이 많아야 돼)
  • 남자는 다 짐승이야
  • 모든 남자는 잠재적 가해자다
  • 남자는 울면 안 돼
  • 남자에 대한 성폭력에 대한 시큰둥한 반응
  • 6.9

하지만 위 사례는 대부분 맨박스(남성의 '남성다움'을 강요하는 것)의 사례다. 하지만 맨박스는 남성이 '남성스럽지 못하고 여성스럽다는 점을 비난'하는 것, 즉 남성이 지닌 여성성을 혐오하는 것이므로 여성혐오(혹은 가부장제)의 또다른 모습이다.

재범오빠 찌찌파티, 남성의 키를 재단하는 것,남자가 돈이 많아야 된다는 편견은 남자가 성적 주체이자 사회의 주체인 것을 기반으로 한 말이며. 남자를 짐승에 비유한 것 역시 여성은 순해야 한다는 여성혐오적 발언이며, '남자는 울면 안 된다'는 말은 남자는 여성과 다르게 당당해야 된다는 가치관에 기반을 두고 있고, '6.9'는 남성의 성기를 강조하는 가부장제 가치관에 기반을 두고 있다. 결국 남성을 강자로 이끌어가고 여성을 약자로 이끌어가라 하는, 일부 여성들이 갖고있는 여성혐오인 것이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남자가 잠재적 가해자라는 것은 실제로 모든 통계와 강력 범죄, 여성을 대상으로 삼은 범죄를 무의식적으로 정당화하는 대부분의 남성들에 의해 증명된 객관적인 사실이다.

즉 이들이 제시하는 모든 것은 가부장제와 여성 혐오에서 파생된 것이다.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남성 혐오

남성 혐오, 혹은 남혐여성혐오를 단순히 요즘 나타나는 혐오감으로만 한정지어 해석할 경우에 성립하는 대립항이다.[7]

그러나 2011년부터 2015년 11월까지의 인터넷상 누적 데이터에서 나타나는 남성 외모 비하나 한남충 등의 표현은 인터넷상의 여성혐오성 단어 사용에 비해 1/6-1/8정도로 낮은 편이며,[8] 여성혐오에 관한 환기를 위한, 대개 풍자와 해악을 동반한 일시적 거울 전략이다. 더 최신 자료는 추가바람.

그러므로 '남성혐오'가 아니라 '남성 비하'[주 2], 맨박스 등으로 명명하는 것이 옳다. 왜냐하면 이러한 현상을 '남성혐오'라고 칭하면 사회를 비꼬는 일종의 풍자나 여러 페미니즘적 일체 활동이 남성혐오로 명명되면서 그 위상과 의미를 격하시키기 때문이다. 즉,소위 '남성혐오'는 꼴페미(페미나치) 등의 비하 표현과 마찬가지로 페미니즘 혹은 여성의 저항을 격하하려는 한 방법이거나, 일부 남성들의 퇴행적 호소이기도 하다. 또한, 이러한 명명화는 페미니스트의 활동의 의의를 깎아내림으로써 여성혐오를 중심으로 한 남성 중심 문화를 강화한다.

또한 기존의 여성혐오적 표현과 남성 비하적 표현에는 근본적인 감정의 차이가 있다. 전자는 위기감, 후자는 공포심(남성공포증)이 기반이기 때문이다.

같이 보기

부연 설명

  1. 심지어 혐오라는 단어의 혐(嫌)자에 이미 ‘계집 녀’가 들어가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2. 혐오와 비하는 다른 표현이다. 물론 혐오에 비하가 들어가긴 하지만, 혐오는 강자가 약자에게 하는 감정인 반면, 비하는 약자가 강자에게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출처

  1. 위키백과 한국어판
  2. 2.0 2.1 Johnson, Alan G. (2005). 《The Gender Knot: Unraveling Our Patriarchal Legacy》 2, revis판. Temple University Press. 107쪽. ISBN 1592133843. 
  3. Flood, Michael, 편집. (2007년 7월 18일).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Men and Masculinities》. et al. London; New York: Routledge. ISBN 0-415-33343-1. 
  4. Gilmore, David G. Misogyny: The Male Malady. Philadelphia: University of Pennsylvania Press, 2009, pp. 10–13, ISBN 978-0-8122-1770-4.
  5. “Misandry#Asymmetry with misogyny”. 《영어 위키백과》. 
  6. 윤지영 전복적 반사경으로서의 메갈리안 논쟁 - 남성혐오는 가능한가, 한국여성철학 제24권
  7. 이민경.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봄알람. 116쪽. 그러나 학술용어로서의 여성혐오 말고, 단순히 요즘 나타나는 혐오감만 뜻하는 경우에는 남성혐오와 여성혐오라고 불러볼 수 있습니다. 
  8. http://m.econovill.com/news/articleView.html?idxno=2725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