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신병자

최근 편집: 2019년 7월 26일 (금)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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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더와 정신병자의 합성어로, 주로 트랜스젠더를 비하하는 속어. 워마드 유저 일부, 트랜스-배제적 페미니스트(TERF) 사이에서 많이 쓰인다. 트랜스젠더를 비하하기 위해 정신병자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으므로 트랜스젠더와 정신병자를 동시에 비하하는 소수자혐오적인 표현이다. 이 속어는 주로 크로스드레서, MTF, FTM[주 1],젠더퀴어지정성별 남성 성소수자를 향해 쓰이고 있다.

젠신병자라는 멸칭어와 터프 낙인에 대해서[주 2]

단어의 유래

젠신병자라는 용어는 ‘트랜스젠더+정신병자’의 합성어로서 트랜스혐오와 정신질환자에 대한 혐오가 중층적으로 내포되어 있다. 이 용어는 게이 커뮤니티에서 먼저 사용되었지만, 퀴어 정치학 내에서 크게 문제시 되지 않았으며 이러한 용어를 사용하는 성소수자 남성들을 지칭하는 특화된 낙인의 이름 또한 아직 존재하고 있지 않다. 퀴어 정치학 내의 헤게모니적 주체이자 남성이라는 젠더 위계의 다수자성을 누리는 게이 커뮤니티의 혐오용어를 페미니스트들이 그대로 차용해온 것은 혐오의 국면을 재생산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 가능하다.[주 3]

단어의 비효용성

남성과 여성 간의 불평등 구조는 젠더가 두 개여서가 아니라, 이 젠더 체제가 비대칭적이고 위계적이기 때문이며, 그러하기에 n개의 젠더들로 숱하게 젠더를 방사해내는 전술이 젠더 체제의 부조리를 해결하는 데에 효과적이지 못하며 오히려 젠더 체제의 공고화에 기여한다고 보는 비판적 관점이 젠신병자라는 용어에서는 전혀 논증되고 있지 못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용어는 전술적 방법론에서나 그것의 목적론에서도 효용성을 갖지못한다.

단어의 혐오성

뿐만 아니라, 트랜스 여성이 겪는 젠더 디스포리아-사회적 현실의 이중적 층위로 인한-를 정신질환이나 망상으로 치부하는 관점은 비트랜스 여성이 겪는 디스포리아-여성이라는 기표에 대한 심리적 현실의 이중적 층위에 의한 불일치성-에 대한 이해 가능성마저 축소하는 것이자 자신의 인식경험만을 유일한 판단기준으로 규준화한다는 점에서 혐오적 측면을 갖는다 할 수 있다.

터프라는 낙인

그러나 여성 페미니스트가 이 용어를 사용한다는 것만으로 터프라는 낙인의 정당성이 충분히 입증되고 마는 비대칭적 정황은, 여전히 ‘무엇을 말했는가?’보다 ‘누가 말했는가?’를 더 중요시하는 젠더 위계의 측면이 존재함을 부인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어떻게 여자가 그런 무시무시하고 혐오적 단어를 입에 담다니![주 4]”라는 여성에 대한 일방적 의미기입-여성은 평화와 조화, 비폭력적 존재라는 통념이 여성의 본질로 전제되는 것-이 이루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페미니스트 여성에게 도덕적 완전무결성을 강령화하고 있음이 바로 여기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주 5][2] 한편, 젠신병자가 터프라는 낙인을 유발했음에도 그 용어를 시작한 성소수자 남성 내부의 특정 집단을 낙인 찍는 용어는 왜 없는가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존재하나, 단순 비교를 할 것이 아니라 낙인을 유발할 정도로 성소수자 남성 내부에서 심각하게 사용되고 있는지의 여부를 따져야 한다. 다시 말하면, '혐오가 중층적으로 내포'[3] 되어 있음이 쉽게 드러나는 용어임에도 래디컬 페미니즘 내에서 무비판적인 수용을 함과 동시에 낙인을 유발할 정도로 가시적이고 강도 높은 사용을 하고 있지 않는지 스스로 질문해봐야 한다.

터프 용어의 낙인화 분석의 한계

다른 성소수자 집단과 연대를 하지 않거나 비판을 가하는 것은 혐오 및 혐오 발언을 드러내는 것과 동일한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논의 앞부분에서 윤지영은 마치 이것이 동일 선상에서 정당화될 수 있는 종류의 문제처럼 여긴다. 그리하여, 트랜스젠더 진영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서는 이런 혐오 발언을 지속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위 항목들에서 윤지영이 스스로 끊임없이 제시했듯이 트랜스여성에 대한 '젠신병자'라는 발화가 여러 문제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용어를 만든) 게이가 아닌 우리만 문제삼냐는 식의 문제 제기를 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이것이 '감히 여자가 혐오발언을 입에 담았'기 때문에 받는 비난이라는 엉뚱한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나, TERF가 다른 소수자에 대한 불만을 혐오 발언으로 드러내어 낙인찍고 배제하는 것이 모종의 사유로 정당화 될 수 있다면, 반대로 TERF를 TERF로 낙인하는 것은 왜 정당화 될 수 없는 지를 설명해야 한다. 윤지영은 이에 대해 설명을 유보하고 있으며, 결국 페미니스트 간 상호 혐오와 공포 정치의 문제로 논제를 바꾸어, 상호 환대를 모색하는 것으로 논의를 귀결한다.

같이 보기

부연설명

  1. 이쪽에게도 쓰이는 경우가 있다. 왜냐하면 트랜스남성을 가부장제의 부역자이자 배신자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2. 이 항목의 서술 대부분은 누군가에 의해 윤지영(2018)의 학술 발표집 발제문 내용을 인용이 아닌, 그대로 전재하는 방식으로 작성되었다. 문제의 소지가 있는지 확인 필요.
  3. 이와 같은 맥락에서 윤지영은 래디컬 페미니즘 내에서 '똥꼬충'이라는 용어를 차용한 것에 대해서도 비슷한 비판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 용어는 "성소수자 남성을 혐오하기 위해 이성애자 남성들이 주로 사용하기 시작했던 개념이었고 이를 무비판적으로 차용해왔다는 점"[1]에서 비판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4. 참고로 이는 미러링때도 나왔던 말이다.
  5. 페미니스트 여성이 남성 퀴어들에 대한 혐오를 하면 페미니스트가 될 수조차 없다고 단정하며 페미니즘 판에서 적출대상으로 규정되지만, 남성 퀴어 운동가가 페미니스트 선언만 하여도 페미니스트가 됨과 동시에 아무리 여성혐오를 해도 그가 페미니스트이자 퀴어 운동가임이 부정되지 않는 상황이다. 이는 이미 여성 페미니스트에 대한 판단 잣대가 엄청나게 높으며 성별에 따른 이중적 도덕 잣대가 페미니즘 판에서도 적용되고 있음을 뜻한다.

출처

  1. 윤지영 (2018.4). [발표] 페미니즘 지각변동. 『한국여성철학회 학술대회 발표자료집』
  2. 윤지영 (2018.4). [발표] 페미니즘 지각변동. 『한국여성철학회 학술대회 발표자료집』
  3. 윤지영 (2018.4). [발표] 페미니즘 지각변동. 『한국여성철학회 학술대회 발표자료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