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니아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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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고슬라비아 분열의 한 사건으로, 1992년~1995년 사이 벌어진 전쟁이다. 요시프 티토 사후 이슬람계 주민들과 크로아티아계 주민들이 유고슬라비아 연방으로부터 독립을 원했고, 세르비아계는 유고슬라비아의 통합을 원했다. 1991년 6월 25일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가 유고슬라비아 연방 탈퇴를 선언, 유고슬라비아군이 이를 진압하러 침공하였으나 분열을 막지 못했다. 이에 자극받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또한 독립하고자 했다. 독립에 반대하던 세르비아계는 본국인 세르비아의 지령을 받아 1992년 1월 스릅스카 공화국을 선포하여 무력도발을 시작했고, 이에 보스니아계와 크로아티아계도 4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로 독립했다.

몇 달 전에 벌어진 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 전역과 달리, 보스니아의 주민들은 종교가 이슬람[주 1], 가톨릭[주 2], 정교회[주 3]로 나뉘어 있었고, 언어는 거의 같은 언어를 사용하며 생활권을 공유하고 있었다. 전쟁이 시작되자 이웃에 살던 종교에 따라 나뉘어 서로를 공격하기 시작했는데, 주된 피해자는 보스니아계였다.

결국 미국이 1995년 개입하여 보스니아계와 크로아티아계를 돕고, 데이턴 협정을 체결하여 내전 종식을 합의하였다.

전쟁범죄

  • 전쟁 기간 동안 민간인들이 사라예보에서 대피하지 못한 채 포격과 저격을 피해가며 일상생활을 했다. UN 평화유지군이 파병되어 물자를 배급하고 장갑차로 시민들을 저격수로부터 가렸다.
  • 스릅스카 공화국의 수장인 '라도반 카라지치'는 "스레브레니차 학살"을 일으켜 8372명의 민간인이 사망했다. 2008년 체포되어 1심에서 징역 40년을 선고받고,[주 4] 항소심에서는 아예 종신형을 선고받았다.[1]
  • 스릅스카 민병대는 보스니아계에 치욕을 주기 위해 보스니아 전역에서 계획적으로 부녀자를 집단강간 및 수용소에 감금하였다. 특히 사라예보 시 근교의 Грбавица(그르바비차) 지역에서 2만 여명의 희생자가 발생하여 죽거나 고향을 떠났다. 해당 사건은 2006년 동명의 영화(Grbavica)로 만들어졌다.

전쟁 생존기

다른 문서로 이동 이 내용은 보스니아 전쟁/생존기 문서로 이동하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12년 6월 레딧에 'selco'라는 유저가 자신을 보스니아 전쟁의 생존자라고 밝히며 AMA(Ask Me Anything)를 진행하여 전쟁 기간의 생존 경험담을 공유했다.

창작물

영상에 일부 잔인한 내용이 있어 재생에 유의할 것
  • 세르비아군가인 듯한 'Караџићу, води Србе своје'가 이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인터넷상에서 이슬람 혐오적 밈에 자주 인용되며 "Remove Kebab" 또는 "Serbia Strong"으로 알려진 노래이다. 영상 처음에 세르비아계 주민이 "Бог је Србин и он ће нас чувати(신은 세르비아인이고 우리를 보호할 것이다)"라는 멘트와 노래 중간중간에 삽입된 전쟁 장면들과 라도반 카라지치의 모습을 보면 당초 업로더는 세르비아 국수주의에 비판적인 입장이던 것으로 보인다. 초기에는 세르비아 국수주의를 풍자하는 의미에서 돌던 "Remove Kebab", "Serbia Strong"이라는 문구가 이 노래와 결합하여 함께 패러디되다가 어느새 맥락이 사라지고 저화질 영상, 웃기는 멜로디, Remove Kebab, Serbia Strong이라는 포인트만 남아 이슬람 혐오에 인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2019년 크라이스트처치 모스크 총격테러사건의 범인이 이 노래를 틀고 범행을 생중계하고부터는 일부를 제외한 상당수 패러디들이 차단되고 Rembve Kebab도 자동완성되지 않게 되었다.
  • 위와 반대로 당시 보스니아 측의 군가들이나 호전적인 가요들에는 "Defend Kebab"이라는 별명이 붙는다.

부연 설명

  1. 보슈냐크, 보스니아계
  2. 흐르바티, 크로아티아계
  3. 스르비, 세르비아계
  4. 해당 재판은 대한민국 출신 권오곤 판사가 맡았다. 2001년 UN 안보리에서 구 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 재판관으로 선출되었다.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