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닉슨독트린'의 영향으로 1970년대 초반까지 이루어진 주한미군의 2만 명 감축으로, 박정희 정권은 철수하는 미군을 붙잡기 위해 '기지촌정화사업(BCCUC)'을 추진하였다.
1971년 12월 22일, 박정희 대통령은 기지촌정화위원회 제정과 미군 기지촌들에 대한 '정화정책'의 공식화를 명령했다. 1972년 7월 박 대통령은 기지촌정화위원회 종합 프로그램을 승인했는데 그 지출예산은 11억 5,000만 원이었고, 기지촌에서 시작된 작업의 완성을 위해 1973~1975년 사이에 위원회로 하여금 종합적이고 지속적인 프로그램 기획을 촉진하도록 지시했다.
기지촌정화운동은 국가안보 방위라는 점에서 청와대의 최우선 순위가 되었고, 1960년대와 1970년대의 기지촌여성들은 정부로부터 직접 관리되었다.[1]
1960년대에는 중일전쟁, 2차 세계대전, 한국대전 등으로 한반도 남쪽에 이주한 중국여성과 일본 여성들이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기지촌에 유입되기도 하였다.
미군 기지촌여성들을 지칭하는 용어들
- 위안부, 미군 위안부, 기지촌 위안부, 양색시, 양공주, 양부인, 양갈보, 기지촌여성, 특수업태부
- 한국 정부가 법률에서 규정하고 있는 공식적인 용어는 '위안부'이다.
자매회
- 위안부 자치회 형식의 단체. 실제로는 정부와 미군부대, 포주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었다.
- 미군 위안부에 대한 관리를 강화할 목적으로 1962년 10월 23일부터 모든 위안부들을 지역재건부녀회에 가입시켜 등록하도록 하였다.
- 기지촌여성들은 자매회 가입 시 회비를 내고, 매달 회비를 납부해야 했다. 회비를 내지 않으면 보건증을 만들수 없었다.
- 196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 기지촌여성들은 클럽 출입구에 자신의 보건증을 꽂아놓고 해당 번호표를 몸에 부착해야 클럽에 들어갈 수 있었다. 출입구에 꽂혀 있는 보건증의 사진을 보고 미군들은 여성을 '컨택'하였다.
- 동두천의 자매회에서는 어려운 형편의 기지촌여성들을 지원하는 자원봉사라고 홍보하며 지구별로 감찰들을 선정해 30여 명의 자원봉사단을 조직하여 운영했다. 감찰이 어려운 형편의 기지촌여성을 찾아내면 쌀 한 말과 연탄 50장을 지원하는 조건으로 자매회에 등록시켰다.
- 감찰들 역시 저녁에는 미군을 상대해야했다.
- 감찰들은 동료들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포주에게 맞서거나 미군범죄가 발생했을때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한편으로 자매회나 포주들의 편에 서서 다른 기지촌여성들을 착취하는 감찰들도 존재했다.
- 1990년대 초중반부터 자매회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끊기면서 자매회는 자취를 감추었고, 회비 적립금의 행방도 묘현해졌다.
기지촌에서 사용되었던 은어들
- 롱타임과 숏타임: 성매매는 시간에 따라 가격이 정해져 있었다. 롱타임은 10~15달러이며 숏타임은 3~5달러. 이를 기지촌여성들은 '긴 밤, 짧은 밤'이라고 불렀고, 미군들은 'long time, short time'이라고 불렀다.
- 이렇게 벌어진 달러는 대부분의 위안부들이 포주에게 진 빚 5~10만원에 대한 달러 이자(1할)와 식대,침구비,방세 등으로 결재됐다.
- 온달러: 기지촌여성들의 외상금액에 최하 3할에서 최고 5할까지 붙는 이자.
- 워먼 드링크: 얼음에 음료수를 넣고 캡틴큐(당시 면세주로 기지촌 미군 전용 클럽에 제공되던 양주명)를 섞어 만든 술. 기지촌여성들은 '짜가술'이라 불렀고, 미군들은 'woman drink'라고 불렀다.
- 왕포주: 대규모 미군 전용 클럽의 포주. 클럽 업주는 여성들을 인신매매하는 비용을 포주집의 포주에게 대여하고 이자 명목으로 기지촌여성들의 화대 수익을 서로 나누며 공동으로 착취했다.
- 타운: 전북 옥구군 미면 북산리 들판에 인접, 미공군부대를 겨냥해서 세워진 실버타운 기지촌. 1만 2천 평 대지에 건설하여 온 마을에 울타리를 치고 정문에는 경비원이 서서 한국인의 출입을 금하고 있다.
- 터큐폰 골목: 용주골 성매매업소(파주시 파주읍 연풍리 일대). 성구매자는 모두 미군들. 최근까지도 인신매매와 성매매범죄로 악명이 높으며, 이러한 형태의 성매매를 지금은 '성매매집결지'나 '유리방'등으로 부른다.
- 토벌: 기지촌여성들에 대한 미군과 한국경찰, 보건소의 합동단속을 말한다. 단속의 목적은 성병 검진을 받지 않는 여성들을 처벌하고 성병 검진을 강제하기 위함이었다.
- 펨푸집: 포주가 고용한 호객꾼이 '히파리집' 골목 입구에서 성구매자인 미군들을 유인해오면 감금돼 있는 기지촌여성들이 미군들을 상대하는 포주집의 유형. 검진증을 낼 수 없는 미성년자 여성들이 많았다.
- 하얀 집: 동두천 낙검자수용소. 기지촌 여성들은 '언덕 위의 하얀 집'이라고 불렀다.
- 낙검자수용소: 성병관리소. 기지촌 여성들은 수용소 내에서 페니실린 주사로 인해 사망하거나, 수용소를 탈출하다가 사망하였다.
- 파주군 법원리 성병관리소: 파주군이 1백 63만여 원을 들여 건평 75평짜리로 1965년 9월에 설치했다. 1967년 11월에 제2성병관리소를 추가설치하였고, 1990년대 후반까지 운영되었으며, 1999년 5월 15일 폐지되었다.
- 헬렐레: 1갑에 5백 원 하는 해피스모크(대마초)에서 세코날, 아로징 등 메프로바메이트류 습관성 약품, 암페타민, LSD 등 고성능 환각제, 모르핀 주사 등 모든 마약성 약 또는 이 약에 취한 미군들을 일컫는다.
묻혀진 범죄들
- 계약동거: 기지촌여성과의 계약동거를 원하는 미군은 그 여성이 빚에 묶여 있는 포주와 거래를 했다. 이렇게 동거하는 여성들은 '미군 위안부'로 관리되었고 정부에 등록을 해야 했다.
- 기지촌여성들은 동거하는 미군과 결혼하여 기지촌을 벗어나기도 하였으나, 미국에서의 학대와 이혼, 인신매매, 귀국 등의 결말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 인신매매: 미군들이 한국여성에게 거짓으로 결혼을 약속하고 포주집에 팔아넘기는 일도 있었다.
- 신차금 씨 살해 사건: 1999년 1월 동두천시 보산동 히파리집에서 신차금 씨가 전깃줄에 목이 졸린 채 숨져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호객꾼의 증언과 피해자의 몸에서 발견된 정액의 DNA검사 결과로 범인으로 지목된 미군 용의자가 있었으나 사건 직후 미국으로 송환되었고, 범인은 끝내 잡히지 않았다.
- 이정숙 씨 살해 사건: 1999년 9월 이정숙 씨가 동두천시 보산동 자신의 방에서 살해된 채 3일 만에 발견되었다. 당시 동거하던 미군이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었으나, 미군 당국의 비협조적인 태도와 한국경찰의 무성의한 수사로 인해 사인 불명의 미해결 사건으로 종결되었다.
- 윤금이 씨 살해 사건
'기지촌활동'
- 1980년대 중반, 문혜림 씨와 유복님 씨가 한국기독교장로회 여신도회의 지원을 받아 의정부시에 기지촌여성들을 위한 선교센터 '두레방'을 개원했다.
- 1990년대 봄부터 이화여자대학교를 중심으로 대학생들이 두레방과의 연대를 시작했고, 1990년 여름방학 기간에는 이화여자대학교, 연세대학교, 서강대학교 등을 중심으로 첫번째 기지촌활동이 조직되었다.
- 새움터: 기지촌활동에 참여했던 여성활동가들과 기지촌여성들이 만든 기지촌여성운동조직.
- 새움터는 1996년 10월 동두천 기지촌에 첫 센터를 개원했고, 2001년 6월 송찬 기지촌에도 센터를 개원하였다.
- 새움터는 군산과 의정부, 파주, 광주 등의 기지촌 지역을 방문하여 기지촌여성들을 지원하였다.
같이 보기
참조
- ↑ 《미군 위안부 기지촌 의 숨겨진 진실: 미국 위안부 기지촌 여성 의 최초 의 증언록》. 한울아카데미. 2013. ISBN 978-89-460-555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