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

최근 편집: 2023년 3월 16일 (목) 12:06

홀로코스트(Holocaust)는 제2차 세계 대전나치 독일유대인, 집시, 슬라브족(소련군 포로와 폴란드인), 성소수자, 사회주의자, 장애인, 정치범을 학살한 것이다. 1933년 1월에 집권한 나치는 독일인을 “우월한 인종”으로 믿는 믿음 하에 유태인을 “열등한 인종”으로 규정하여 소위 독일의 인종 사회를 위협하는 외부인으로 치부하였다.[1]

홀로코스트 유래

“홀로코스트”는 “불에 의하여 희생된 제물 (번제)" 이라는 의미의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말이다.[1]

홀로코스트와 여성[2]

나치의 이데올로기는 집시 여성, 폴란드 여성 그리고 일상 생활의 영위가 힘든 여성들도 목표로 삼았다. 여성만으로 구성된 수용소가 존재하기도 하였고 일반 수용소 내에서도 여성 수감자들을 위한 특정 지역이 정해져 있기도 했다.[2]

  • 1942년, SS 당국은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아우슈비츠 II)에 여성 수감자들을 따로 수용하기 위한 별도의 수용동을 세우기도 하였다.
  • 1944년, 베르겐-벨젠 수용소 당국은 여성 수용소를 별도로 건설하였다.
  • 1945년, 소련군이 라벤스브뤼크 수용소를 해방하였을 당시, 수용소에는 100,000명 이상의 여성들이 수용되어 있었다.

수감자 수송 과정에서 임산부와 어린 아이들의 어머니는 계속적으로 “노동 불가능자”로 낙인찍혔다. 그들은 대량 학살 수용소로 수송되어 제일 먼저 가스실로 보내지곤 했다.

게토집단 수용소에서 독일 당국은 여성들을 강제 노동에 투입하였는데 그 작업 환경은 심히 열악하여 죽는 사람이 속출하였다. 독일 의사들과 의학 연구팀은 유태인과 집시 여성을 상대로 불임 연구나 비 윤리적 인간 실험을 실시하였다.

수용소에 수감되었던 여성들

수용소에 수감된 많은 여성들은 서로 정보와 음식 그리고 의류를 공유하면서 생존을 꾀하는 비공식적인 “상호 보조(Mutual assistance)” 단체를 형성하였다. 이러한 단체는 주로 같은 도시나 지방 출신이거나 비슷한 학벌 또는 가족 유대 관계를 가진 여성들끼리 형성되었다. SS 수용소 관계자들이 의류 수선, 요리, 세탁 및 청소 같은 일에 배정한 여성들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레지스탕스 활동

사회주의, 공산주의 또는 시온주의 청년단원 소속 여성들의 경우 레지스탕스 활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폴란드의 경우, 여성들은 정보를 게토에 전달하는 밀사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다. 많은 여성들이 동부 폴란드의 삼림 지대와 소련으로 탈출하여 무장 빨치산 부대에 합류하였다.

같이 보기

관련 저서

  • 1996년, 다니엘 요나 골드하겐(홀로코스트 이론가) 『히틀러의 자발적 사형집행인들』
  • 2000년, 노르만 핀켈슈타인(홀로코스트 이론가) 『홀로코스트 산업: 홀로코스트를 초대형 돈벌이로 만든 자들은 누구인가?』

출처

  1. 1.0 1.1 “홀로코스트”. 《홀로코스트 백과사전》. 2021년 1월 23일에 확인함. 
  2. 2.0 2.1 “홀로코스트 기간중의 여성들”. 《홀로코스트 백과사전》. 2021년 1월 23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