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트 보고서: 여성 섹슈얼리티에 관한 전국적 연구(The Hite Report: A Nationwide Study of Female Sexuality)》는 셰어 하이트가 1976년 집필한 여성 섹슈얼리티에 대한 보고서이다.[1][2] 대부분의 미국 여성이 이성 간의 성교를 통해 오르가즘에 도달하지 못한다고 발표해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2]
페미니즘판 《킨제이 보고서》로 불리기도 하며, 미국 섹슈얼리티 역사에 있어서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페미니즘적 입장에서 하이트 보고서는 오르가즘에 부과된 가부장적 환상의 층위를 벗겨내고, 침실에서 교섭할 수 있는 여성의 능력을 고양시켰다고 평가된다.[1]:49
내용
《하이트 보고서》는 킨제이, 마스터스&존슨, 피셔, 헬렌 카플란과 같은 당대의 첨단을 달렸던 성과학자들을 인용하면서 불감증이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했다.[1]
실제 미국 여성들의 목소리에 기반해 미국 여성들의 행동과 생각을 통계적으로 집계하고 분석함으로써 성 의학이 갖는 남성중심성을 폭로하고 성 혁명이 여성에 대해 가지는 억압적이고 착취적인 성격을 페미니즘적 입장에서 비판했다.[1]
영향
배경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미국은 섹슈얼리티의 격변기를 겪고 있었다.
20세기 중반 미국 사회는 성의 이상이자 완성을 이성애적 성교로 언설화했다. 따라서 이때의 미국 소녀들에게 성이란 임신의 공포과 처녀성의 상실, 그리고 명예의 상실을 불러일으키는 아주 문제적인 무언가였다.[1]
또한 1950년대까지 미국에서 가장 큰 성 관련 문제는 여성들의 불감증이었다. 성과학의 대중화를 맞으면서 미국은 성공적인 성을 측정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로 오르가즘을 지목했으며 이때 성숙한 여성은 질을 통해 오르가즘을 느낀다고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감증은 여성 자신의 문제였고 기혼여성들은 자신들이 만족스러운 섹스를 즐기지 못한다고 말하길 꺼려할 수밖에 없었다.[1] 당시의 오르가즘 이론에서 여성의 오르가즘은 여성성의 중요한 증거인 동시에 남성의 노력에 따라 그 성취 여부가 갈리는[1]:41 모순적인 것이었다.
1960년대부터 여성의 순결이 갖는 상징적 의미가 여성들 사이에서 급격히 꺼져 가고 있었다.[1] 1960년대는 경구피임약이 시판된 시기이기도 한데, 기존에 다이아프램이라는 물리적 피임기구가 있었지만 경구피임약의 등장으로 여성들을 보다 편리하게 피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피임약은 여성들이 쾌락으로써의 성을 누릴 수 있게 도와주는 일종의 '성 해방'의 촉매제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오르가즘은 성의 기준으로 객관화되기 시작했고 성은 의료의 대상이 되었다. 마스터스와 존슨은 《인간의 성 반응》이라는 책에서 임상적으로 오르가즘을 계량화해 성에 대한 '객관적'인 지표를 만들었고, 1966년부터 1970년까지 미국의 대중잡지에 글을 기고하여 여성의 성 혁명에 중대한 영향력을 끼쳤다. 이들로 인해, 여성의 섹스를 남성에게 종속적인 수동적 표식으로 간주했던 정신분석학적 해석이 힘을 잃었으며, 여성의 성을 남성과 독립적으로 사고할 수 있게 하는 기반이 제공되면서 기존의 이성애 질서에 위기가 찾아오기 시작했다.[1]:45-46
그런 와중에 《하이트 보고서》는 자유주의 의료전문가들의 지원을 받으며 1976년 출판되었다.[1]:48
평가
여성의 불감증, 질 오르가즘, 클리토리스 오르가즘을 둘러싼 담론이 격화되던 이 시기 《하이트 보고서》는 여성의 성 혁명에 있어 중대한 분기점이 되었다.
이 보고서의 출판 이후, 전문 학술지는 물론이고 신문, 여성잡지들도 그 내용을 주목하며 신속하게 반응했다.[2] 1970년대 주류 포르노 잡지들은 음핵을 여성 섹슈얼리티의 핵심으로 다루기 시작했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