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셋(프레임)

최근 편집: 2018년 6월 19일 (화) 17:32
쮸우쮸우빔 (토론 | 기여)님의 2018년 6월 19일 (화) 17:32 판 (어색한 문장고치기 및 출처필요 표기)

여성은 아름답지 않을 권리가 있다.

"코르셋(프레임)"은 19세기 유럽 여성들에게 강제되었던 코르셋과 같이, 현대 사회에서 여성에게 강제되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당시 모든 여성은 아름다움을 원해 코르셋을 자발적으로 착용한다고 생각하였으나, 코르셋을 입지 않은 여성은 한 명도 없었고 '남자가 말에서 내려줄 때 두 손에 허리가 잡히는 여자'가 이상향으로 추앙받던 때에 숨통을 막고 소화 기관을 파괴하는 코르셋을 하루도 빠짐없이 착용한 것은 여성 개인의 선택이라고 볼 수 없다.[출처 필요]

원인

근본적 원인

왜 사회는 여성에게 아름다움을 강요했는가?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가부장제 즉 남성들의 효과적인 여성 통치 수단이다. 여성 스스로가 주체화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아름다움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존재'로 타자화한 것. "여자는 꽃"이라는 말과 같이 말이다.

여성에게만 강요되는 아름다움

여성 노동자만 취하는 코르셋
여성 노동자만 취하는 코르셋
아동복 사이즈의 교복[1]

이상적인 여성은 아름다운 여성이다

미디어에 나오는, 혹은 추앙받는 여성들의 모순적이고(가슴과 엉덩이는 풍만하되 허리와 팔다리는 마른) 비정상적이고(월경을 하지 못할 정도의 체중이고[주 1] 깡마른(쇄골과 갈비뼈가 보이는[주 2]) 몸매는 모든 여성의 기준이 된다. 미디어에서 반복적으로 출연하고, 또한 소비되는 이러한 모습을 통해 여성들은 자신에게 기대되는 것이 무엇인지, 즉 자신들이 사회에서 (대리)권력을 얻으려면[주 3] 무엇이 필요한지 알게 된다.

"모든 여자는 아름답다"

코르셋을 장착하지 않은 이들에게 "여자가 꾸미지 않으면 이상한 것"이라 가해지는 사회의 가스라이팅뿐 아니라, "모든 여자는 꾸미지 않아도 아름다운 것"이라는 말 또한 '여성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전제를 기반으로 한다.

여성 스스로의 코르셋 재생산

여성이 자신의 '여성성'을 강화하여 스스로를 성적 대상화하면서, 여성 개인은 남성들로부터 매우 일시적이고 시혜적인 대리권력을 획득하게 된다.

코르셋의 타격

우리는 자신이 멀티태스킹의 강자이길 바라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 우리의 관심이 외모로 움직이게 되면 다른 무언가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줄어든다.

활동성의 제약

여성에게 강요되는 꾸밈, 치마, 오프숄더, 짧은 하의는 후천적 '장애'를 만들어낸다. 하이힐이 대표적인 예다. 왜 하이힐을 신은 모습이 예뻐 보이는가? 이유는 하이힐로 일종의 '장애'를 얻었기 때문이다. 가슴이 나오고 골반이 뒤로 빠지는 기형적 자세, 다리를 꼬게 되는 걸음, 조심조심 내디뎌야 하는 발자국. 가슴골을 손으로 가리고 짧은 치마를 입고 다리를 오므리며 성인으로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모습은 '조신하다'는 말로 남성들의 취향이 된다. 남성이 좋아하는 모습은 성인 여성으로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경제적 타격

몸매를 드러내는 디자인의 옷들은 조금만 살이 쪄도 못 입는 옷들이 되어 버린다. 옷들이 버려지지 않기 위해선 옷에 몸을 맞추어야 하며, 못 해낼 경우 결국 옷을 전부 새로 사도록 만든다. 옷을 새로 사는 것은 가방, 구두, 악세서리 같은 자잘한 소품의 연쇄 소비를 일으킨다.[2]

사회에서 여성은 화장을 하는 것이 기본값이며 서비스직의 여성은 남성보다 임금은 적게 받으며 더 많은 꾸밈 비용을 써야 한다.[3]

"코르셋 = 여성성"?

코르셋은 항상 여성에게만 부과되어 왔고, 그래서 여성성의 전유물 혹은 결과로 취급받았다. 그러나 긴 머리, 치마, 화장이 여성성이라는 주장은 앞뒤가 뒤바뀐 해석이다. 여성에게만 아름다움이 강요된 사회가 여성이 코르셋을 취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다.

여성성에 대한 비하다?

탈코르셋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코르셋에 대한 고찰 혹은 탈코르셋이 여성성에 대한 비하로 이어진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애초 '여성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편견과 여성혐오 그 자체이며, 사회적 코르셋은 여성 스스로가 착용함으로써 재생산되고 유지되기 때문에 여성의 변화 없인 사회의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탈코르셋

이러한 코르셋을 벗어나자는 말은, 다음과 같은 의미이다.
"여성 자신이 하는 행동과 선택이 사실은 온전한 본인의 의지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주입된 무의식적 코르셋(프레임)일 수도 있다. 사고를 옥죄는 사회의 시각을 벗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비판적으로 사고하자."

또한 탈코르셋은, 남성성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성을 타파하는 것이다. 화장을 하지 않는 여성, 중요한 날 치마를 입지 않는 여성, 숏컷을 하는 여성의 수가 많아질수록 여성 한 명 한 명이 느끼는 화장에 대한 의무감, 활동성을 제약하는 치마를 입겠다고 느끼는 날, 짧은 머리를 시도할 때 느끼는 부담은 줄어든다. 여성에게 강제되던 여성성을 타파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페미니즘이 가부장제의 인지와 비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부장제 타파를 위해 실질적으로 액션을 해야 한다고 가정했을 때, 가부장제가 해온 가장 강력한 수단인 코르셋 즉 아름다움의 정형을 벗어나고 의도적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않는 것은 분명 매우 효과적인 저항이다.

탈코르셋 운동의 의의

탈코르셋 운동의 의의[4]

삭발과 절바지, 슬리퍼가 코르셋의 완성형이다?

코르셋이 의미하는 것은 '여성에게만 부과되는, 기능성 없이 오로지 아름다움만을 위해 존재하는 모든 것'이다. 신체를 제약하는 하이힐 대신 스니커즈를, 불필요한 긴 머리 대신 단발과 숏컷을, 화장 대신 본인의 얼굴을 되찾는 것이 코르셋의 탈피가 될 것이다.

또한 탈코르셋의 핵심은 화장과 다이어트 자체를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지닌 아름다움이라는 강박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노메이크업도 예쁘다'는 말은 또 다른 형태의 코르셋이다. 지금 당장 코르셋을 벗어 던진다 해도 하루 너댓 개씩 바르던 스킨케어로 가꾼 피부, 저녁을 굶고 강박적으로 관리하던 저체중, 눈썹 정리와 염색, 펌, 영구제모. 코르셋의 잔해는 너무나 오래 너무나 많이 남는다. [5]

현대판 '코르셋'

브래지어

브래지어는 중세 시대 코르셋에서 유래한 것으로, 여성의 유방 건강에 전혀 필요하지 않은 속옷이다.

메이크업

메이크업은 무기가 될 수 있다?

왜 여성은 화장 없이, 편한 츄리닝을 입은 채론 남자를 껄끄럽게 할 수 없는가? 우리가 껄끄러워하는 남성의 옷차림은 무엇이었는가? 여성은 개인의 돈, 시간, 건강을 투자해야 남자를 껄끄럽게 할 수 있지만 남성은 편한 차림으로, 여성을 정말로 죽여버릴 수 있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여성들이 꾸밈노동을 해서 무엇이 달라졌고 무엇을 얻었는가? 남성이 꾸밈노동을 하지 않고 쭉쭉 승진할 때, 여성들은 열심히 꾸밈노동을 해서 남자를 기 죽인 덕분에 무엇을 얻었는가. 소비되고 버려지지 않았는가?
꾸밈노동은 페미니즘이 될 수 없다. 여성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은 페미니즘이 아니다. 하고 싶은 걸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그날을 위해, 페미니즘은 여성에게 강요되는 것과 금지되는 것을 타파하고자 하는 운동이다.[6]

긴 머리

머리카락은 신체 기능에 불필요한 죽은 단백질이다. 그런데도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과 돈이 소모된다. 샴푸와 린스, 염색, 펌은 당연히 신체에도 매우 유해하다.

신여성의 탈코르셋 운동

역사채널e '단발머리를 한 모단걸'
역사채널e '단발머리를 한 모단걸'

꾸밈이란 여성억압을 벗기 위한 단발은 신여성이 일으켰던 일종의 탈코르셋 운동이었다. 이상을 위해, 목적을 위해, 그리고 긴 머리카락이 주는 여성억압 관습에서 해방되기 위해 머리카락을 자른 것이다.

이는 1886년 이화학당이 들어서면서 시작된 19세기의 운동이다. 여성에게 단체로 교복을 입게하고 이들이 학생임을 알기 쉽게 했으며 월터선생이 통치마에 어깨끈을 달면서 전과 다른 편의성이 드러나고 치맛단이 짧아지면서 활동성이 생겨났다. 그리고 1920년부터 신여성들을 중심으로 유행한 단발머리는 구습에 억매이지 않고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했던 여성들의 바람으로 시작되었다. 관리가 어려운 긴머리를 유지하는 것이 구습과 여성억압의 상징이라는 것을 백년 전의 여성들도 인지했던 것이다. [7]

하이힐

여성의 신체를 제약하고 활동성과 실용성을 제거하는 대표적인 코르셋. 건강에 하등 좋은 것이 없는 것은 전족과 마찬가지임에도 불구하고 하이힐 신은 여성은 항상 당당하고 멋진 리더로 묘사된다.

피어싱타투

여성은 자신을 표현할 때 높은 확률로 신체를 훼손한다. 또 자신의 매력과 개성을 외모로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비권력자의 특징이다. 정치인 등 남성 권력자를 보면 외모를 통한 개성 표출은 권력자가 절대 하지 않는 행동임을 알 수 있다.[8]

피어싱과 타투는 사회의 제약에 반기를 드는 행동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다른 의미로는 신체의 훼손을 통한 자아 표현이자 개성 표출이다.

미디어에서 나타나는 여성의 모든 것

미디어에서 남성은 매우 다양한 캐릭터를 지니고 있다.[주 4] 그러나 미디어에서 여성이 소비되는 방식은 단 두 가지이다. 아름다운 성녀로 떠받들어지거나[주 5], 못생기고 인기 없으며 돼지 같고 그 누구도 '여성으로서 바라보지 않'는 여성[주 6]

두 여성 캐릭터가 받는 대우와 표현 방식의 극명한 차이는 여성은 전자의 모습을 취하여 남성들의 성적 대상이 되어 (대리)권력을 얻는 것이 당연하며 후자는 이상하고, 특수하고, 비정상적이며, 사회적이지 못한 모습이라고 주입시킨다.

섹슈얼리티에서의 코르셋

케이트 밀렛에 따르면, 1930년대~60년대 사이의 여성들은 D.H. 로렌스, 헨리 밀러, 노만 메일러 등의 작가들이 글에서 묘사한, 남성들로부터 성적 학대를 당하고 굴욕감을 느낄 정도로 창피당하는 관계를 이상적인 성적 행동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와 일치되지 못하는 자신을 성적 실패자들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한다. 예로 들 수 있는 글은 섹서스인데, 이 글에서 여성은 성적으로 창피와 모욕을 당하면서도 매우 그를 즐기는 여성으로 나온다.[주 7]

'개념녀'가 되기를 자처하는 행위

코르셋은 스스로를 '김치녀'와 분리시키고 남성들의 프레이밍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며 스스로 개념녀가 되려 하는 행위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같이 보기

부연 설명

  1. 여성 아이돌 대부분은 다이어트로 인하여 월경이 중단된다.
  2. 동물이 쇄골과 갈비뼈를 드러낼 때 우리는 이를 동물학대로 생각하지만, 여성이 쇄골과 갈비뼈를 드러낼 때 이는 아름다움의 기준이 된다.
  3. "예쁜 여자는 고시 삼관왕"
  4. 이를테면 JTBC의 예능 '아는형님'에서는 키 작은 남자, 키 큰 남자, 돈 없는 남자, 돈 많은 남자, 예쁜 남자, 못생긴 남자, 재미있는 남자, 재미없는 남자, 예의없는 남자 등 이 나온다.
  5. '아는형님'에서 게스트로 출연하여 '아름다움'으로 소비되는 여성 등
  6. '안녕하세요'의 이영자, '코미디빅리그'의 박나래, '개그콘서트'의 박지선, 오나미, 김민경 등.
  7. 밀렛은 섹서스의 독자들이 허구와 실재를 구별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 포르노 문학은 종종 광고와 똑같은 방식으로 기능을 발휘한다고 말했다.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