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셋(프레임)

최근 편집: 2018년 7월 10일 (화) 22:28
쮸우쮸우빔 (토론 | 기여)님의 2018년 7월 10일 (화) 22:28 판

"코르셋(프레임)"은 16세기 이후 20세기까지 널리 사용된 여성복식의 중요한 품목이며,[1] 최근 탈코르셋이라는 신조어 내(內)에서는 현대 사회에서 오로지 아름다움을 위해 여성에게 강제되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당시 모든 여성은 아름다움을 원해 코르셋을 자발적으로 착용한다고 생각하였으나, 코르셋을 입지 않은 여성은 한 명도 없었고 '남자가 말에서 내려줄 때 두 손에 허리가 잡히는 여자'가 이상향으로 추앙받던 때에 숨통을 막고 소화 기관을 파괴하는 코르셋을 하루도 빠짐없이 착용한 것은 여성 개인의 선택이라고 볼 수 없다.[출처 필요]

원인

근본적 원인

왜 사회는 여성에게 아름다움을 강요했는가?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가부장제 즉 남성들의 효과적인 여성 통치 수단이다. 여성 스스로가 주체화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아름다움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존재'로 타자화한 것. "여자는 꽃"이라는 말과 같이 말이다.

그렇기에 외모 강박에 관한 담론은 성 역할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일부 남성들도 외모에 대한 걱정으로 고통받을지 모른다. 그러나 아름다움이 여성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은 남성의 경우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외모 강박은 여성에게만 한정된 이야기는 아닐지 모르지만, 압도적으로 여성의 문제다.[2]

사회의 아름다움에 대한 강요

여성 노동자만 취하는 코르셋
여성 노동자만 취하는 코르셋
아동복 사이즈의 교복[3]
동아일보의 조사 결과[4]

여성이 무엇을 하고, 무엇을 말하고, 무엇이 될 수 있는지 와는 상관없이 여성의 외모에만 초점을 맞추는 문화는 외모 강박을 키운다. 그리고 우리가 보는 이미지, 자신이나 다른 여성을 묘사하는 언어를 통해 강화된다. 또한 여성에게 외모로 모욕을 주는 사람들이 외모 강박을 부추긴다. 물론 능력이 아닌 외모로만 칭찬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2]

이상적인 여성상 = 아름다운 여성

미디어에 나오는, 혹은 추앙받는 여성들의 모순적이고 비정상적이고 깡마른 몸매는 아름다운 여성의 기준이 된다. 그렇게 여성들은 가슴과 엉덩이는 풍만하되 허리와 팔다리는 마르고, 월경을 하지 못할 정도의 체중이고[주 1], 쇄골과 갈비뼈가 보이는[주 2] 몸을 추구하게 된다. 미디어에서 반복적으로 출연하고, 또한 소비되는 이러한 모습을 통해 여성들은 자신에게 기대되는 것이 무엇인지, 즉 자신들이 사회에서 (대리)권력을 얻으려면[주 3] 무엇이 필요한지 알게 된다.

더불어 프로페셔널한 여성의 모습을 하이힐을 신은 모습으로 묘사하는 등 비정상적인 미를 추구하는 이미지를 성공한 여성의 모습으로 주입시키면서, 남성의 입맛뿐 아니라 여성들의 워너비조차 코르셋을 조이는 모습으로 만드는 것이다.

"모든 여자는 아름답다"

코르셋을 장착하지 않은 이들에게 "여자가 꾸미지 않으면 이상한 것"이라 가해지는 사회의 가스라이팅뿐 아니라, "모든 여자는 꾸미지 않아도 아름다운 것"이라는 말 또한 '여성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전제를 기반으로 한다.

여성 스스로의 코르셋 재생산

여성이 자신의 '여성성'을 강화하여 스스로를 성적 대상화하면서, 여성 개인은 남성들로부터 매우 일시적이고 시혜적인 대리권력을 획득하게 된다.

사회는 어떻게 여성에게 코르셋을 주입시키는가

사회화 과정에서 주입되는 외모 강박

내가 다섯 살 때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나를 플로리다에 있는 놀이공원인 사이프러스 가든스에 데려갔다. 그곳에는 아름다운 꽃뿐만 아니라 남부 미녀처럼 옷을 입고 공원을 돌아다니는 젊고 매력적인 여성 직원들로 가득했다. 미녀들은 양산을 들고 프릴이 잔뜩 달린 파스텔 색깔의 풍성한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당시의 나는 예쁘고 꾸미고 돌아다니는 여성을 왜 고용했는지, 그리고 남부 미녀에 걸맞은 남부 미남은 왜 없는지를 궁금해하기엔 너무 어렸다. 심지어 그녀들이 왜 모두 젊고 마른 백인인지를 묻기엔 너무 어렸다.[2]

외모의 파편화

신체 경험에 대한 여남 차이는 단순한 만족이나 불만족 이상으로 확장된다. 영국 서식스대학교의 연구자들은 영국 여성과 남성 수십명을 인터뷰한 결과 여성이 자신의 몸을 더 파편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여성은 각 신체 부위를 실망의 연속이라 표현했고 '나쁘지 않은' 부위는 아주 드물었다. 배는 너무 출렁거리고 허벅지는 지나치게 굵으며 피부는 얼룩덜룩하고 머릿결은 푸석거린다. 각 신체 부위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언제든 따로따로 분리할 수 있다.

반면 남성은 자신의 몸에 대해 좀 더 전체론적인 접근법을 취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마도 남성은 신체적 능력에 대해 훨씬 더 많이 생각한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연구에 참여한 모든 남성은 모두 자신의 몸이 어떤 능력을 지녔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나 여성 중에는 그런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아마도 여성은 자신들의 몸은 행위가 아닌 관상용이라는 메시지를 내면화했을 것이다.[2]

"아름다움이 주는 권력"

여성에게 아름다움이 주는 권력을 누리라고 강조하는 이야기를 각종 미디어를 통해서도 쉽게 만날 수 있다.[주 4] 아름다움은 다른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일종의 권력을 부여해준다. 그러나 그 권력의 성격은 어떠한가?

우선 이 권력은 타고나지 않으면 획득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아름다움은 노력해서 얻을 수 있지도, 노력해서 간직할 수 있지도 않다. 우리는 아름다움이 민주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자주 잊는다. 그런 이유로 아름다움이 여성에게 주는 권력은 언제나 불평등을 내재한다.

무엇보다도 아름다움이 주는 권력은 불안정한 토대에 서 있다. 이 권력은 다른 사람들이 인지해주어야만 존재할 수 있다. 이를 좌지우지하는 누군가가 항상 존재하기 때문에 오로지 당신만의 권력도 아니다. 심지어 놀라울 정도로 엄격한 소멸 기한이 주어진 권력이다.[2]

코르셋의 타격

여성은 끔찍한 손해를 보고 있다. 전도유망한 젊은이가 자신의 외모를 걱정하느라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 채 세월을 흘려보낸다. 외모 강박은 여성을 거울 앞으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세상을 발전시키기 위한 열정과 노력에서 멀어지게 한다. 외모에 쏟는 에너지와 걱정을 세상에 쏟아냈다면 그녀의 인생은, 이 세상은 얼마나 달라졌을까.[2]

병과 같은 강박적 사고

외모 강박은 공식적인 병이 아니다. 그러나 다른 여러 질병과 마찬가지로 파괴적인 증상을 보인다. 급증하는 섭식장애(거식증,먹토)와 성형수술 등 명백한 증상이 있다. 실제로 '먹토'라는 단어를 여초 커뮤니티와 남초 커뮤니티에 각각 검색해보면, 후자에서는 아무 결과가 나오지 않는데에 비해 전자에서는 수백 건의 결과가 나온다. 그리고 조금 미묘한 증상도 있다. 예를 들어 SNS에 올릴 완벽한 셀카를 만드는 데 들이는 시간과 에너지 같은 것이다. 외모 강박은 의사나 심리학자가 진단 내릴 수 있는 병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성은 모두 이 병을 앓고 있다.[2]

활동성의 제약

여성에게 강요되는 꾸밈, 치마, 오프숄더, 짧은 하의는 활동을 제약하여 일종의 핸디캡으로 작용한다. 하이힐을 신어 가슴이 나오고 골반이 뒤로 빠지는 기형적 자세, 다리를 꼬게 되는 걸음, 성큼성큼 딛지 못 하는 걸음, 가슴골을 손으로 가리고 짧은 치마를 입고 다리를 오므리는 것은 여성이 성인으로서 제대로 기능하지 못 하는 모습이다. 이러한 모습은 '조신하다'는 말로 남성들의 취향이 된다.

경제적 타격

몸매를 드러내는 디자인의 옷들은 조금만 살이 쪄도 못 입는 옷들이 되어 버린다. 옷들이 버려지지 않기 위해선 옷에 몸을 맞추어야 하며, 못 해낼 경우 결국 옷을 전부 새로 사도록 만든다. 옷을 새로 사는 것은 가방, 구두, 악세서리 같은 자잘한 소품의 연쇄 소비를 일으킨다.[5]

사회에서 여성은 화장을 하는 것이 기본값이며 서비스직의 여성은 남성보다 임금은 적게 받으며 더 많은 꾸밈 비용을 써야 한다.[6]

"코르셋 = 여성성"?

코르셋은 여성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긴 머리, 치마, 화장이 여성성의 결과라는 주장은 앞뒤가 뒤바뀐 해석이다. 여성에게만 아름다움이 강요된 사회가 여성이 코르셋을 취할 수밖에 없게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여성성에 대한 비하다?

탈코르셋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코르셋에 대한 고찰 혹은 탈코르셋 운동이 여성성에 대한 비하로 이어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회적 코르셋은 여성 스스로가 착용함으로써 재생산되고 유지되기 때문에 여성의 변화 없이는 사회의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러한 여성성 개념의 타파는 여성혐오가 될 수 없다.

현대판 '코르셋'

브래지어

브래지어는 중세 시대 코르셋에서 유래한 것으로, 여성의 유방 건강에 전혀 필요하지 않은 속옷이다.

긴 머리

머리카락은 신체 기능에 불필요한 죽은 단백질일 뿐이다.[7] 그런데도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샴푸와 린스, 염색, 펌과 같은 유해한 물질과 시술이 끊임없이 필요하며 이에는 엄청난 시간과 돈이 소모된다.

메이크업

메이크업이 코르셋인지, 또한 페미니즘이 추구해야 할 사회가 '모든 여성이 그 어떤 것이든 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할지 혹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여성도 (남성도) 메이크업을 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할지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다.

메이크업은 무기가 될 수 있다?

왜 여성은 화장 없이, 편한 츄리닝을 입은 채론 남자를 껄끄럽게 할 수 없는가? 우리가 껄끄러워하는 남성의 옷차림은 무엇이었는가? 여성은 개인의 돈, 시간, 건강을 투자해야 남자를 껄끄럽게 할 수 있지만 남성은 편한 차림으로, 여성을 정말로 죽여버릴 수 있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꾸밈노동은 페미니즘이 될 수 없다. 하고 싶은 걸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그날을 위해, 페미니즘은 여성에게 강요되는 것과 금지되는 것을 타파하고자 하는 운동이다.

여성들이 꾸밈노동을 해서 무엇이 달라졌고 무엇을 얻었는가? 남성이 꾸밈노동을 하지 않고 쭉쭉 승진할 때, 여성들은 열심히 꾸밈노동을 해서 남자를 기 죽인 덕분에 무엇을 얻었는가. 소비되고 버려지지 않았는가?

꾸밈노동은 페미니즘이 될 수 없다. 여성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은 페미니즘이 아니다. 하고 싶은 걸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그날을 위해, 페미니즘은 여성에게 강요되는 것과 금지되는 것을 타파하고자 하는 운동이다.[8]

하이힐

여성의 신체를 제약하고 활동성과 실용성을 제거하는 대표적인 코르셋. 건강에 하등 좋은 것이 없는 것은 전족과 마찬가지임에도 불구하고 하이힐 신은 여성은 항상 당당하고 멋진 리더로 묘사된다.

피어싱타투

피어싱과 타투는 사회의 제약에 반기를 드는 행동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다른 의미로는 신체의 훼손을 통한 자아 표현이자 개성 표출이라는 주장이 존재한다.

여성은 자신을 표현할 때 높은 확률로 신체를 훼손한다.[출처 필요]또 자신의 매력과 개성을 외모로(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비권력자의 특징이다. 정치인 등 남성 권력자를 보면 외모를 통한 개성 표출은 권력자가 절대 하지 않는 행동임을 알 수 있다.[9]

미디어에서 나타나는 여성의 모든 것

미디어에서 남성은 매우 다양한 캐릭터를 지니고 있다.[주 5] 그러나 미디어에서 여성이 소비되는 방식은 단 두 가지이다. 아름다운 성녀로 떠받들어지거나[주 6], 못생기고 인기 없으며 돼지 같고 그 누구도 '여성으로서 바라보지 않'는 여성[주 7] 두 여성 캐릭터가 받는 대우와 표현 방식의 극명한 차이는 여성은 전자의 모습을 취하여 남성들의 성적 대상이 되어 (대리)권력을 얻는 것이 당연하며 후자는 이상하고, 특수하고, 비정상적이며, 사회적이지 못한 모습이라고 주입시킨다.

섹슈얼리티에서의 코르셋

케이트 밀렛에 따르면, 1930년대~60년대 사이의 여성들은 D.H. 로렌스, 헨리 밀러, 노만 메일러 등의 작가들이 글에서 묘사한, 남성들로부터 성적 학대를 당하고 굴욕감을 느낄 정도로 창피당하는 관계를 이상적인 성적 행동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와 일치되지 못하는 자신을 성적 실패자들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한다. 예로 들 수 있는 글은 섹서스인데, 이 글에서 여성은 성적으로 창피와 모욕을 당하면서도 매우 그를 즐기는 여성으로 나온다.[주 8]

'개념녀'가 되기를 자처하는 행위

코르셋은 스스로를 '김치녀'와 분리시키고 남성들의 프레이밍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며 스스로 개념녀가 되려 하는 행위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탈코르셋

이처럼 여성 스스로가 행하는 아름다워지기 위한 모든 행동은 사실 온전한 본인의 의지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주입된 무의식적 코르셋일 수도 있다. 탈코르셋은, 사고를 옥죄는 사회의 시각에서 벗어나 비판적으로 사고하고자 하는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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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부연 설명

  1. 여성 아이돌 대부분은 다이어트로 인하여 월경이 중단된다.
  2. 동물이 쇄골과 갈비뼈를 드러낼 때 우리는 이를 동물학대로 생각하지만, 여성이 쇄골과 갈비뼈를 드러낼 때 이는 아름다움의 기준이 된다.
  3. "예쁜 여자는 고시 삼관왕"
  4. 내 이름은 김삼순 · 미녀 공심이와 같은 드라마, 렛미인 같은 예능, 신데렐라 같은 설화는 모두 여성이 아름다워진 후 겪는 변화를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5. 이를테면 JTBC의 예능 '아는형님'에서는 키 작은 남자, 키 큰 남자, 돈 없는 남자, 돈 많은 남자, 예쁜 남자, 못생긴 남자, 재미있는 남자, 재미없는 남자, 예의없는 남자 등 이 나온다.
  6. '아는형님'에서 게스트로 출연하여 '아름다움'으로 소비되는 여성 등
  7. '안녕하세요'의 이영자, '코미디빅리그'의 박나래, '개그콘서트'의 박지선, 오나미, 김민경 등.
  8. 밀렛은 섹서스의 독자들이 허구와 실재를 구별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 포르노 문학은 종종 광고와 똑같은 방식으로 기능을 발휘한다고 말했다.

출처

  1. 전양진 (2015). 18-20세기 서유럽 코르셋에서 나타난 문화적 양면성에 관한 연구. 인문과학연구논총, 36(1), 267-288.
  2. 2.0 2.1 2.2 2.3 2.4 2.5 2.6 러네이 엥겔른.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번역 김문주. 웅진 지식하우스. 
  3. @trans_Huntress2017년 7월 2일 트윗.
  4. 조유라&김호경 기자 기자 (2018년 7월 5일). “여고생 교복, 초5 아동복보다 8cm 짧네”. 《동아일보》. 
  5. @femi_read2018년 6월 18일 트윗.
  6. @bbakchur_R2017년 12월 16일 트윗.
  7. “머리카락은 잘라도 왜 계속 자라나요?”. 《네이버 지식백과》. 아름답고 윤기 나는 머리카락은 실제로 죽은 세포들의 긴 줄기(케라틴 섬유)일 뿐입니다. 
  8. @6hpm92017년 12월 9일 트윗.
  9. @metaege2018년 5월 6일 트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