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운동

최근 편집: 2017년 4월 20일 (목)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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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혀진 여성 항일운동

  • <암살>의 전지현 같은 여성 독립운동가 1900명 넘는다
  • 1919년 3.1운동 직후인 3월 중순에 정신여학교 동창인 오현주, 오현관, 장선희 등이 '혈성단애국부인회'를 결성하고, 4월에 기독교계통의 여학교 출신인 최숙자, 김희옥 등이 '대조선독립애국부인회'를 결성하였다.[1]
    • 두 단체는 대한민국청년외교단의 주선으로 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이후 하나로 통합되었다가, 김마리아, 황에스터를 중심으로 간부 17명이 단체 명칭을 '대한민국애국부인회'로 개칭하였다.
    • '대한민국애국부인회'는 교사,간호사,교회지도급여성 등을 중심으로 100여 명 이상의 회원을 모집하고 6천여 원의 독립자금을 모금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보냈으나, 11월말 오현주의 배신과 밀고로 김마리아 등 9명이 일본 헌병에 의해 기소되어 1~3년의 형을 선고받고 조직이 와해되었다.
  • 1919년 6월 한영신 등이 조직한 평양장로교계 부인회와 박승일 등이 조직한 감리교계 부인회가 임시정부의 권유로 11월에 연합하여 평양을 중심으로 '대한애국부인회'가 결성되었다.
    • '대한애국부인회'는 통합된 후 각 지방에 지회를 두고 군자금을 수합해 임시정부에 보내는 등의 활동을 하였으나, 1920년 10월에 군자금을 송치하던 회원들이 일본 헌병에게 붙잡혀 1~3년의 형을 선고받고 해체되었다.
  • 그외 3.1운동 이후 1920년대까지 조직된 여성항일단체: 대한부인청년단(평남 사천), 대한국민부인향촌회(평남 순천), 부인관찰단(평남 안주), 대한독립부인청년단(평남 대동), 여자복음회(평남 개천), 의용단과학생구국단(부산)
  • 1927년 5월에 민족주의 여성운동계인 김활란, 유영준, 유각경 등과 사회주의 여성운동계인 박원민, 정종명 등이 '근우회'를 창립하였다.
    • '근우회'는 여성문제 토론회와 강연회 개최, 야학실시, 문맹퇴치, 여공파업의 진상조사, 고아주학생운동 및 각종 항일학생운동 지도와 지원 등으로 활동하였고, 일제의 탄압과 여성운동자들과의 사상적 차이로 1931년에 해체되었다.
  • '근우회'가 해체된 후, 여성운동가들은 해외로 망명하여 국내항일비밀단체 또는 동북항일유격대, 조선의용군, 한국광복군 등에 참가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 1905년 4월 일본에서 김정화, 나혜석 등이 중심이 되어 '조선여자유학생친목회'를 조직하고 2.8독립선언에 적극 참가하였다.
    • 1919년 9월 훈춘에서 김숙경 등 여성 200여 명이 '훈춘애국부인회'를 결성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 1919년 10월 상해에서 이화숙, 김원경, 이선실 등이 '대한민국애국부인회'를 조직하여 임시정부의 활동을 보조하였으나, 1920년대 후반 임시정부의 활동이 축소되면서 부인회의 활동 또한 줄어들었다. 1943년 2월 충칭에서 각계 여성 50여 명이 애국부인회 재건대회를 가진후 김순애를 주석으로 방순희를 부주석으로 선임하여 군인위문, 여성 계몽교육 등의 활동을 하였다.
    • 1928년 2월 김마리아, 황에스터 등이 '근화희'를 조직하여 재미한인들의 광복운동을 후원하고 여자유학생간의 친목을 도모하였다.
  • 1921년 6월 숙명여학교 보습과생들은 일본인 교사의 교수방법에 불만을 품고 '동맹휴학'을 하였다. 이러한 동맹휴학은 전남 영암의 공립보통학교, 황해도 신막공립보통학교, 함흥의 영생여학교, 경성여자상업학교 등 전국적으로 퍼졌다.
    • 1928년 11월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에서 장매성, 박옥련 등이 '소녀회'를 결성하였다.
    • 1929년 11월 3일 일본인 남학생이 통학열차 안에서 여학생을 희롱한 것으로 학생운동이 발생하자, 이에 동참하고 시험을 거부하는 '백지동맹'을 벌였다.
  • 1940년 9월 광복군이 창설되자, 독립운동지도자의 자녀와 부인 등이 광복군 여성대원으로 편성되었다. 그중 오광심, 김정숙, 지복영, 조순옥, 신순호, 민영주는 총사령부가 창설될 당시부터 광복군에 편성된 여성대원이었다.
    • 광복군총사령부는 광복군의 선전활동을 위해 오광심, 지복영, 조순옥 등의 여성대원을 주축으로 선전과를 편성하고, 한국어,중국어,일어 등으로 된 전단과 벽보를 작성하고 배포하는 활동을 벌였다. 또한 오광심, 지복영, 조순옥 등의 여성대원들은 광복군의 기관지 <광복> 발간활동에 참여하여 원고의뢰와 작성, 번역 등 간행업무를 담당하기도 하였다.
    • 현재까지 국가보훈처에서 공식적으로 판단하는 여성대원 인원은 약 20여 명에 불과하지만, 당시 총사령부 예하에 4개 지대가 편성되었으며 각 지대별로 약 30여명이 활동한 기록으로 추정하건대, 여성대원 인원은 약 100여 명이었다.

항일 운동가

남성 항일 운동가

참조

  1.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12년 12월 14일). 《6.25 전쟁 여군 참전사》. ISBN 978-89-89768-8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