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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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朴槿惠, 1952년 2월 2일- )는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며 18대 대통령이었다. 전 5선 국회의원이기도 하다.

정계입문 이전

서강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하였다.

영남대학교 이사장, 육영재단 이사장, 정수장학회 이사장을 지냈다.

대통령 당선 이전 정치 행보

야당 대표를 하면서, 선거 대응에 탁월한 역량을 보이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근혜는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1997년 12월 한나라당에 입당하였다. 이회창 후보를 지지하는 유세를 하였다.

1998년 대구광역시 달성군 재보궐 선거에서 처음 당선되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두 번째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지역구는 대구 달성군이었다.

2004년 한나라당노무현 대통령 탄핵 추진의 역풍을 맞아 위기를 맞았다. 2004년 3월 박근혜는 홍사덕 등을 제치고 한나라당의 당 대표가 되었다. 이때 박근혜는 천막당사로 당사를 이전했다. 2004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지역구 100석, 비례 21석을 받으며 총 121석을 획득한다. 열린우리당의 152석에 비하면 적지만, 당시 분위기로 봤을 때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주 1] 박근혜 역시 대구 달성군에서 당선되며 3선을 한다.

사실 이 당시 이명박이랑 같이 사학법 개정에 저지를 건 적이 있다. 사실 이는 나중에 나비효과가 되었는데, 실제로 학교에서 일어난 미투운동 중의 태반이 거의 사립 여자고등학교-여자중학교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나마 공립인 경우는 감시하는 국가라도 있었지만, 사립에서는 아무 견제 수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이떄 사학법이 통과되었으면 외부의 눈치를 많이 봐야 되었기에 사립 고등학교 내에서의 성희롱 등이 더욱 빠르게 사라졌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2006년 5월 지방선거 유세 도중 박근혜는 한 남성으로부터 얼굴에 자상을 입는다. 이때 입원 중 선거를 챙기면서 박근혜가 한 말인 "대전은요?"라는 말이 화제가 되었다. 이로 인하여 열린우리당은 아무래도 선거에 불리했는 데 그나마 경합이였던 대전에서도 패배함으로써, 전북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참패하였고, 한나라당은 호남,제주를 제외한 전 지역에서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당내 경선에서 이명박에게 패배하였다. 이때 박근혜는 '줄푸세' 공약("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치는 세운다")을 내세웠다.

2008년 대구 달성군에서 네 번째로 국회의원에 달성되었다. 득표율은 무려 88.57%.

2011년 말 박근혜는 한나라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이 되었다. 이어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꾼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비례대표로 당선되었다. 5선.

2012년 12월, 양자구도의 제18대 대선에서 51.55%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48.02%의 문재인을 이기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때 케치프라이즈는 "준비된 여성 대통령", 참고로 여성 대통령 후보이자 이공계(전자공학과) 후보라서 그런지 주목을 많이 받았다.[주 2]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

박근혜는 대한민국의 제18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2013년, 이명박 정부 시기 국가기관의 18대 대선 개입 의혹이 제기되었다.

2014년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로 304명이 사망했으며, 이후 무능한 대처가 밝혀지자 박근혜 정부는 임기 내내 지속적으로 비판을 받게 된다. 특히 세월호 7시간 의혹은 덤이다.

2014년 10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연기하였다.

2016년 총선에서 집권여당 새누리당은 메르스 사태,동남권 신공항 등의 여러 문제로 인하여 부산과 경남,강남3구 등지에서 상당 수 의석을 잃으면서 122석을 얻는 데 그쳐 제2당으로 떨어졌다.

그래도 TK권이나 노년층에선 지지세가 탄탄했는지 2016년 10월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알려지기 전까지는 대체로 30% 이상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었다. 세간에서는 30%를 "콘크리트 지지율"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 난뒤에 2016년 10월 25일 대국민 사과를 하였지만, 국정농단의 여파는 대단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하였고, 결국 4%라는 최저득표율을 갱신하는 불명예를 기록했다.

탄핵

2016년 12월 3일 헌법과 법률 위반으로 인해 '대통령(박근혜) 탄핵소추안'이 발의되었고, 12월 9일 가결되었다. 이어 3월 10일 박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의 선고 재판에서 재판관 8명 전원 만장일치로 파면이 결정되었다.

탄핵 이후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박근혜는 수인번호 503을 부여받았다.

2017년 11월, 자유한국당에서 출당되었다.

2018년 2월 27일, 1심 재판에서 검찰은 박근혜에게 징역 30년과 벌금 1185억 원을 구형했다. 1심 선고는 4월 6일이며 TV로 중계되었다. 징역 24년과 벌금 180억 원이 선고되었다.

여담

사실 탄핵 가결 직후 AP통신에서도 "대한민국 국회, 박근혜 대통령 탄핵 가결. 한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의 충격적인 추락(BREAKING: South Korean lawmakers vote to impeach President Park Geun-hye, a stunning fall for country's first female president.)"이라는 제하의 속보를 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은 박근혜를 비판하거나 비방할 때 여성이라는 점을 언급하고 있다. 물론 이게 최초의 여성대통령 이라는 점에서 꽤나 많은 주목을 받았었기에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박근혜는 여성 대통령 후보로써 화제를 몰고 왔었기에 더욱 그렇다. 사실 사회적 소수자성으로 마케팅한 사례는 이전에도 있었기에 여성 대통령의 당선과 탄핵은 당연히 충격을 얻을 수 밖에 없다.(노무현 대통령도 고졸 인권변호사 마케팅을 했고, 이명박은 개천에서 용이 된 남성 일명 "개룡남" 마케팅을 했었고, 오바마 대통령도 흑인 마케팅을 했었다.)

단 이를 통하여 여성 = 무능으로 단정 짓는 건 지양해야 된다. 왜냐하면 이건 여성혐오로부터 비롯된 2차 젠더 편향과 고정 관념 중 한 개 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박근혜가 탄핵된 이유는 많은 실책들 때문에 일어났지,여성이라서 일어난 게 아니고, 남성 대통령 중에서도 박정희,전두환,이명박이라는 큰 실책을 많이 저지른 대통령이 있었고[주 3], 여성 대통령이 아니라도 심상정,신지예,이정미,추미애 등 유능한 여성 정치인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상정이 첫 여성대통령이였으면 좋겠다 생각하는 분도 많았다.[주 4]

가족 관계

어머니 육영수, 아버지 박정희 사이에서 첫째로 태어났다. 엄밀히 말하면 박정희 입장에서 박근혜는 첫째가 아닌데, 박정희육영수와 혼인하기 전의 첫 결혼에서 이미 큰딸이 있었기 때문이다.

동생은 박지만박근령이다.

가수 은지원이 박근혜의 5촌 조카이다.

비하어

대표적인 게 닭그네,닭이 있으며, 간혹 폐닭,닭뇬 등도 쓰였다. 물론 후자는 명백히 여성 비하적인 발언이기에 지양하는 게 낫다.

부연 설명

  1. 사실 이때만 해도 한나라당의 예상 의석은 50석 미만이였다. 하지만 영남권,강남3구에서 겨우 신승함으로써 121석이라는 의석을 건진 것이다. 그래도 여파는 컸는지 통영-고성에서도 10% 정도 차이로 겨우 신승하는 등 이변이 일어났었다.
  2. 이때 까지 선거에선 대통령이 항상 남성-인문계열 후보가 당선되었다. 박근혜는 이를 다 깬것
  3. 박정희는 친일,지역감정 형성,독재가 있고, 전두환은 5.18과 쿠데다, 이명박은 4대강 사업과 다스 논란 등이 있다.
  4. 실제로 심상정인 경우는 독재에 맞서 싸운 여성운동가 + 진보정당 여성 3선이라는 대표성이 있기 때문이다.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