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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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자대학교
Ewha Womans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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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학교법인이화학당
위치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이화여대길 52
종교감리교
역사
개교1910년
현황
웹사이트


이화여자대학교는 대한민국 최초 사립 종합 여성 대학교이다. 약칭은 이화여대, 이대이다. 알파걸·페미니즘 상징으로 여성혐오 표적이 되기도 한다. 미란이, 케리건 메이, 퀸 와사비가 동문이라 힙합 명문 이라고 불린다. [1]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초등학교·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부속 이화·금란중학교·이화여자대학교 부설고등학교는 이화여자대학교 후문쪽에 차례로 위치하였다는 특징이 있다. 이화여자대학교 정문·후문 거리가 매우 길다는 특징이 있다. 현재는 성차별 채용·코로나19 원격 수업 등록금 반환에 대하여서 총학생회나 학생들이 입장을 내고 있다. 이화학당 학교들이 학교 규모가 매우 크다. 배화여자대학교·연세대학교·서강대학교·홍익대학교가 굉장히 근거리에 있다. 영란여자중학교·이화여자고등학교·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뭐하고 있길래 여자 교육 무용론까지 나왔단 말입니까? 심각하게 질문해야 할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격을 도야하며, 국가와 인류 발전에 공헌할 수 있는 지도자.

여성을 양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1886년 5월 31일 미국에서 온 선교사 메리 스크랜튼은 조선 여성들의 교육을 위해 여학교를 설립했다. 1887년 고종은 이 학교에 "이화학당" 이라는 명칭을 하사하였다.

1910년 이화학당에서는 대한민국 최초로 여성에 대한 대학 교육을 실시하였고, 1912년 대학과를 설치하여 1914년 대학과 제1회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1925년에는 일제의 억압 정책으로 전문학교로 격하되었다. 1935년 3월 신촌으로 이전하여 현재의 신촌캠퍼스 터에 자리잡게 되었다.

1946년 8월 15일, 대한민국 최초의 종합대학교로 인가를 받았다. 초대 총장으로는 김활란이 취임했다. 1949년 "이화여자대학교" 라는 이름으로 제1회 졸업식을 치렀다.

최경희 총장 사퇴 후 공백기를 거쳐 취임한 김혜숙 총장은 이화여자대학교 교원, 직원, 동문, 학생의 직접 선거로 선출되었다. 학생투표 반영비율은 8.5%이다.

학생회

학생회 대학 구호는 '해방이화'이며, 학생회 명의 앞에 사용한다.

제48대 총학생회(샤우팅이화, 2016년)

제49대 총학생회(스타팅이화, 2017년)

스타팅이화 총학생회는 최경희 총장 사임 후 차기 김혜숙 총장이 취임하기까지의 공백 기간 동안, 총장 선출 과정에서 학생의 목소리를 더욱 반영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여러 차례 '총장 선출 관련 4자 협의체'에 참여하였고, 설문조사 및 직접행동 등을 진행하였다.

총학생회는 당초 학생:교수:직원=1:1:1 투표반영비율을 주장하였고, 3월 학생총회 및 설문조사를 거쳐 학생투표반영비율 요구안을 25%로 조정하였다. 그러나 4월 이사회는 학생투표 반영비율을 8.5%로 확정하였다. 결국 학생투표 반영비율이 바뀌지는 않았으나, 총학생회는 선거 과정에서 해시태그 이벤트 및 총장 후보자 정책 비교 전시를 열기도 하였고, 총장후보자와 학생들이 질의응답을 하는 자리도 마련하였다. 스타팅이화 네이버 블로그

제50대 총학생회(E;ffect, 2018년 1월 1일 임기 시작)

부정적 평가

이화여자대학교에 대한 남자들 혐오 반응은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1994년 6월 이화여자대학교 교수·학생 2006명이 군복무 가산점제도 폐지를 청원하였다. 1997년 제대군인 지원 법률로 제정돼 1998년 8월 국무회의에 통과됐다. 여성단체들은 "군가산점 제도는 여성·군 미필자 국가 구조적 차별정책. 채용 후 호봉 군 경력이 포함되는 이중 혜택을 누려웠다." 라며 동참하였다. 그러면서 1998년 10월 19일 이화여자대학교 동문 5명·연세대학교 남자 장애인 동문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하여 1999년 12월 23일 재판관 전원 일치로 위헌 판결이 나서 폐지됐다. [2] 그러면서 남자들 위주로 이화여자대학교를 향한 혐오가 이어졌다.

실제로 위의 사건과 여성에 대한 편견으로 인하여 이화여자대학교 동문들은 꼴페미[주 1], 된장녀[주 2] 등의 대표주자격으로 불린다. 동시에 엘리트인 여대[주 3]라는 이유로 성적 대상화되는데, 그 실례로 한국에서 생산되는 포르노그래피에 "이대생" 들이 엄청나게 많이 등장하는 예시를 들 수 있다.

한국 남자들이 이화여자대학교 하면 떠올리는 이중적인 판타지(성녀와 창녀 이분법, 엘리트 여성들에 대한 애증) 때문에 그들 내부에서조차도 일관되지 않은 의견 차이를 보인다. 남초에서 말하는 이화여대생들의 이미지를 종합하면 “학교 안에서는 여적여 마인드로 학점, 외모, 집안 모든 방면에 걸쳐 서로 기 싸움을 하며 학교 밖에서는 아빠돈 남친돈으로 명품백 사고 비싼 커피 사먹는데다가 술집에서 일하는 창녀들인 주제에 나랑 섹스도 안해주는(감사할 줄 모르는) 탈코 쿵쾅 꼴페미”로, ‘그 말대로라면 이대생들이야말로 대한민국에서 제일 바쁜 집단’이라는 우스갯소리가 함께 돌았다. 이대생들이 남성인 본인을 사랑해주길 원하면서도 만약 다른 남성을 선택한다면 그 남성의 특징(“키가 크다”, “돈이 많다”, “비싼 차를 몬다”, “학벌이 좋다”)을 분석하여 자신에게 없는 것을 찾아내고, 그 열등감을 오히려 상대 여성인 이대생들에게 표출하는 태도를 취한다. 이렇게 이대생들에게 선택받지 못한 자들이 갖는 원한은 60대가 되어도 그들의 마음 속에 열등감으로 자리하고 있다.

영화 타짜에서 돈 많은 늙은 남성을 미모와 애교로 유혹하여 돈을 갈취하는 일을 하는 정마담의 대사인 “나 이대 나온 여자야”는 위에서 서술한 ‘남성들의 욕망’을 보여주는 예시 중 하나다. 서강대학교 출신 남성 감독 최동훈에 따르면 정마담이 실제 이화여자대학교 재학생 설정이었지만, 정마담을 연기한 김혜수는 정마담이 이화여자대학교 동문이 아니며 캐릭터의 학벌에 대한 ‘세속적인 욕망’을 표현하는 대사라고 해석했다.[3]

최순실 게이트 이후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이화여대에 입학하여 온갖 학사문란의 중심에 서 있다는 것이 드러나자, 일부 커뮤니티에서 "순실여대" 라는 멸칭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러한 멸칭은 이화여대학생이 정유라와 관련된 부정부패를 직접 고발하였으며[4], 이화여대가 부정부패에 연루된 총장을 직접 끌어내리고[5] 최순실 게이트를 이끌어 내는 데 일조한 정황과 해당 사건에 대해 서강대[6]와 함께 가장 먼저 시국선언을 한 대학[7]이라는 배경을 배제한 채 '이화여대'를 낙인화하려는 시도이며 여성혐오의 일종으로 페미나치와 마찬가지로 각 단어의 배경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 없이 '정유라가 이화여대를 나왔다'는 단편적인 지식만으로 만든 단어로 보인다.

비판

  • 김활란

여화여자대학교 재학생이 김활란 초대총장 동상 앞에 친일행적을 밝히는 팻말을 세우기가 예고된 가운데 학교가 불허하여 마찰한다. 기획단은 17년 1월 8일 김혜숙 이화여대 총장을 비롯하여 학교 관계자들과 함께 간담회를 진행하였다. 이화여대 관계자들은 사실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누구에게나 어려운 시기였기에 이화여대를 지키기 위하여 그랬다라고 설득하였다. 팻말설치가 동문들 논쟁·갈등을 야기한다 학교 외부 친일 행위가 알려졌는데, 내부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없다라는 발언으로 알려졌다. 한달 임시게시물이면 허가할 수 있다 공·과를 함께 담으면 심의에 통과할 수 있다라며 중재안을 제시하였지만, 기획단은 거부하였다. "일제 강점기 빼앗긴 나라를 찾기 위하여 목숨까지 바쳤던 분들을 생각하면, 조국·민족을 팔아 사익을 도모하였던 친일행위는 정당화 할 수 없다." "학교 관계자들 발언에 깊은 유감을 느낀다." "간담회 내내 학교가 친일 역사를 마주하고 바로잡으려는 의지가 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친일파가 동상으로 기려지는 곳이 아니라, 친일 행적을 뼈아프게 성찰·지성 공간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라고 밝혔다. 학교 관계자는 "제막식 자체를 금지할 계획은 아직 없다. 향후 팻말이 설치되면 조치 계획도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라고 밝혔다. 그는 이화여대 출신 한국 최초 여성박사로 YWCA 창설하였다. 친일 행정으로 인하여 2004년 제정된 일제강점하반민족행위 진상규명 특별법에 따라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올랐다. 그는 조선임전보국단 부인대 간부직을 맡으며 정신대·학도병 지원을 선전하여 친일행위를 하였다. [8]

  • 파주 조성사업

파주시는 이미 내부적으로 법률 검토를 마치고 소송 준비에 들어갔고, 파주 시민들도 집단 소송을 준비중이다. 파주시 전폭적인 지원을 누려오던 이화여대가 일방적으로 사업 포기를 선언하여 지자체 대학 먹튀 논란으로까지 확산됐다. 경기도는 10년 5월 임진각 DMZ평화센터에서 이화여대가 주관하는 자연사 특별전시회에 6억을 지원하였다. 09냔 11월에 시민화관 대강당에서 파주캠퍼스 조성을 자축하기 위하여 열린 사랑의 노래,평화의 노래 공연에 7700만원이 지원됐다. 시의회도 대학 유치를 위하여 상하수도 연인자부담금 87억 면제를 위하여 조례를 개정하였다. 이에 "대학 이전을 빌미로 자치단체에서 단물만 빼먹고 먹튀한 장사꾼"이라고 비판하였다. 파주시는 127억을 반납하라고 이화여대 측에 보냈다. 이화여대는 10년 캠프 에드워드 부지 감정평가액은 652억이었지만, 국방부 평가액은 1750억이라 합의매수에 실패하였다고 주장하였다. 파주시는 "부지 매입 후 연구·개별 사업비로 땅값 차액을 보전하겠다" 라고 하자 "시·도의회 승인이 없는 비공식 제안" 으로 거부하였다. 파주시 부시장은 "이화여대는 5년동안 이 사업 성사를 위하여 동문들에게 쉬백억원 기금을 모아왔다. 사회적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일방적으로 사업을 포기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 이라고 비판하였다. 10년 8월 총장이 바뀌면서 성향 차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경기도, 파주시, 이화여대는 2006년 10월,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뒤 월롱면 영태리 반환 미군기지 캠프 에드워드 21만9000㎡와 인접 국유지 7만㎡ 등 28만9000㎡에 파주캠퍼스 건립 사업을 추진하였다. [9]

  • 불법 영상 유출

16년 5월 17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자대학교 교정 안에서 갑자기 차 한대가 등교하던 재학생을 향하여 돌진하였다. 차에 치여 날아가 담벼락에 부딪힌 뒤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옷이 찢어져 속옷이 보인다. 재학생 5명이 급히 뛰어와 다친 재학생을 살피며 종이 가방으로 몸을 가려주었다. 하지만 끔찍한 이 영상은 인터넷으로 퍼졌다. 왜냐하면 CCTV 영상이 불법 유출됐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이화여자대학교로 민·형사상 소를 제기하는 법적 대응에 나섰다. 경로는 前 직원 이씨가 빼돌렸다고 한다. 교통사고 당일 저녁 CCTV 영상을 몰래 복사하고, 인터넷에 게재하였다고 한다. 회원 중 일부가 타 인터넷 게시판으로 유포하여 삽시간에 영상은 인터넷 곳곳으로 퍼졌다. 이에 신상정보가 노출되고, 악성 댓글에 시달리는 2차 가해를 겪게 됐다. 이화여자대학교는 유출 사실을 파악하고도 사건을 은폐하려는 정황이 포착됐다. 어머니에게 "경찰에 수사의뢰를 하였으니 기다리라." 라고 전하였지만, 경찰 관계자는 "수사의뢰는 없었다. 나중에 필요하면 수사의뢰를 하겠다고만 하고 끝났다." 라고 밝혔다. 김성민 변호사는 "유출된 영상은 개인정보로 볼 여지가 많다. 유출 당사자 이씨·이화여자대학교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 라고 밝혔고, 류기일 사무총장도 "애초에 이화여자대학교가 내부통제를 구축하여 동영상 유출을 막았어야 하였다." 라고 밝혔다. 이에 이화여자대학교 관계자는 "어머니에게 수사의로를 하였다고 잘못 말하여 죄송하다. 합의를 권한 이유는 원만한 해결이 최선이라고 판단하였기 때문. 초반에 수사의뢰를 하였으면 일을 키우지 않는다는 아쉬움이 있다. 동영상을 유출한 이씨는 해고됐고, 재발방지를 위하여 관리 체계를 개선하였다." 고 해명하였다. [10] 이에 "학생 보호 우선 아닌가? 동영상 유출은 어떤수로 막았어야지 이기 극치!" "거짓말만 하는 학교. 총장 책임지고 사퇴하세요" "의뢰 안하고 거짓말 쳤다니. 양아치" "학생은 괜찮은지 궁금하네요" "속옷 보이는 여성 학생 동영상을 43살이나 먹고 왜 올렸는지. 악플 다는 인간들은 무엇.. 왜 올렸나 알아보시고, 단순 유희로 올렸으면 같이 처벌하세요. 피해 학생은 죄 없으니 당당하시기를" "거짓말 일삼으며 학생들에게 스승대접 바라는 자신들 모습을 하루빨리 돌아보기를" "피해자 너무 힘들었겠어요. 가족들도 얼마나 마음 아팠겠어요. 사고 당하여 힘든데 악성 댓글이라니요. 우리 모두 살면서 예고하지 못한 사고·어려움 당할 수 있는데, 위로는 못할 망정 악성 댓글이라니요. 수사하여 다음에 재발하지 않도록 하였으면 합니다. 수사하여야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라는 반응이 이어졌다. [11]

2014년 8월 모든 이화여대생들의 악몽이 된 최경희 총장이 취임했으며 그 이후 일어난 학사문란, 미래라이프대학(평생교육단과대학) 사업 추진 등의 일로 이화여대생들과 교수들은 본관을 점거하고 투쟁 중이다. 미래라이프대학 사업 철회, 최경희 총장 사임 등의 승리를 거두었으나 최순실 게이트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점거와 시위를 지속했다.

  • 학내 반여성주의 행보

2015년 <전국여성대회>를 주최한 한국여성단체협의회는 국민의힘을 지지하고, 상류층 여성들을 대변하였다. 심지어 이화여자대학교 김활란 이름은 건 여성 지도자 상 수여식도 포함됐다. 이 행사에 박근혜가 참석하여 여성을 언급하며 축사를 하여 10월 29일 이화여자대학교 교정에서 기자회견을 게최하여 반여성정책·역사교과서 국정화 전환을 비판하였다. 이에 "학생들이 공부를 하여야지, 무엇을 알고 그러느냐" 라고 비하를 받기도 하였다. 이화여자대학교 재학생들은 다강당으로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이어갔다. 하지만 학생들 마중 나온 사람은 수많은 사복 경찰들이었다. 이에 재학생들은 "내 등록금 내고 다니는 학교다! 왜 못지나가게 하느냐" "경찰이 학교에 들어와 학생들을막다니 지금 유신 시대로 회귀하였냐" "무엇이 두려워 무기도 없는 학생들을 폭력적으로 가로막냐" 라고 항의하였다. 학생들은 분노에 찬 눈물을 흘리며 "박근혜는 학생들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당신은 여성을 말할 자격이 없다!" 라고 항의하는 동안 박근혜는 학교 후문으로 몰래 들어와 행사장에 입장하였다. 재학생들은 분노하였다. 이에 박근혜는 황급히 이화여자대학교를 빠져나갔다. 그러면서 언론에 전국적으로 보도되는 낭패를 당하였다. 재학생들은 "대학가에서 커져가는 국정화 반대 목소리를 한 번이라도 들은 적 있냐. 위안부에 동지적 관계 운운하는 교과서를 추진하는 대통령 방문은 필요 없다. 노동개약으로 우리 청년들 일자리 계속 불안정하게 만들고, 위안부에 자발적으로 따라갔다 하는 역사관을 가진 역사책 만드는 사람들 데려가면서 여성대회 오실 생각을 하셨냐. 세월호 참사 진실을 은폐하며, 시간제 일자리 확대·보육 복지 삭감으로 평범한 여성 삶을 더욱 나락으로 모는 박근혜는 여성 지도자를 운운할 자격이 없다. 오늘 항의 행동이 널리 알려져 더 많은 대학생 항의로 번져나가도록 애쓰겠다." 라고 다짐하였다. [12] 한겨레 한겨레 기사에서는 이화여자대학교 재학생을 칭찬하고, 재학생 탄압이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박근혜는 "여성 발전이 곧 우리 사회 발전. 여성 잠재된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겠다." 라는 발언을 하였다고 한다. 이날 경찰만 300명이 투입됐다고 한다. 국력낭비로 재학생들을 탄압하기 위하여 이정도 인력까지 낭비하며 탄압하고 있는 셈이 됐다. 격렬한 대치가 이어지며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였고, 일부 학생들은 부상을 입었다고 전하여진다. 노동자연대 이화모임 양효영씨는 "우연히 학교 인터넷 게시판에서 박근혜가 전국여성대회 방문한다고 알게 돼 박근혜 정부 비판적인 학생 단체들·총학생회가 함께 기자회견을 준비하게 됐다. 교과서 국정화로 사회가 논란이 되고 여성을 대표할 자격도 없기 때문에 목소리를 보여주려고 하였다. OECD 여남 임금격차 1위·시간제 일자리로 여성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려는 대통령이 여성에 대하여 말하여 황당하다. 노동개혁 반대·대학 구조조정 반대 4가지를 비판기조로 삼고 기자회견을 준비하였다." 라고 밝혔다. 재학생 최씨는 "박근혜는 여성 지지가 아니라, 아버지 후광으로 대통령이 된 사람이므로, 여성 역사에 넣기를 반대한다.", 김씨도 "국정화 교과서는 주변 사람 대부분이 반대하고 있다. 기자회견은 당연히 하여야 하는 일" 이라고 밝혔다. 이에 강원도 정선 새마을부녀회 회장 손씨는 "춥고 배고팠던 엄마들 시대를 겪어보았으면 학생들이 현명하게 행동하였다. 그 시절 새마을운동, 여성운동 하면서 나라를 일으켰다. 기자회견은 보기 흉하다." 라며 갈라치기를 하는 참가자들 모습이 대조적이었다. [13]

지하철역

동문

다음을 참고할 것 분류:이화여자대학교 동문

총장

이화여자대학교의 역대 총장.

모두 여성이며, 대부분 미혼이다.

2. 역대 총장 목록[편집]

2.1. 초대 메리 스크랜튼[편집]

조미수호통상조약 이후로 선교의 자유가 허용되면서 조선으로 건너온 미국인 선교사들[1] 중 1명으로, 종교는 개신교 중 북감리교 계열이다.


조선 말기 여성의 지위가 매우 낮은 것을 보고 여학교를 설립하기로 결심, 서울 중구 정동에 학당을 설립했다. 단 1명의 여학생으로 학당을 시작, 고종으로부터 이화학당이라는 현판을 하사받아 운영하였다. 이화여대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분. 학교의 정신적 지주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이분의 이름을 딴 "스크랜튼 대학"이라는 단과대학도 있다.


한편 이화학당뿐 아니라 1902년에는 경기도 수원에 삼일소학당이라는 여학교도 세웠다.

2.2. 제4대 룰루 프라이[편집]

1910년 이화학당에 대학과를 설치, 여성에게도 대학교육의 길을 열었다. 유관순 열사 재학 당시 교장이기도 하며, 유관순 열사가 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하자 시신을 인도받아 장례를 치러주었다.

2.3. 제5대 자네트 월터[편집]

체육 수업을 시작했다.[2] 당시 학생들이 입던 한복 치마에 어깨끈(어깨허리)을 달아, 가슴을 숨막히게 조이지 않으면서도 활동하기 편리하도록 개량했다.

2.4. 제6대 앨리스 아펜젤러[편집]

배재학당을 세운 헨리 아펜젤러 목사의 딸로,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어가 유창했다. 이화학당 대학과를 이화여자전문학교로 개편하고, 이화여전을 정동에서 신촌으로 옮기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2.5. 제7대 김활란[3][편집]

이화학당 고등과와 대학과를 졸업했고, 모교 교사가 되어 교장까지 되었다. 이화 최초의 한국인 교장(총장). 일제강점기 당시 친일 등의 이유로 여러 방면에서 까이고 까이는 총장.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학교를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도 있지만 그녀가 한 일은 다음과 같다. 중일전쟁이 발발한 이후부터 조선총독부가 지원하는 조선부인연구회, 방송선전협의회, 애국금차회에 참여했고,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과 조선언론보국회, 조선임전보국단을 통해 강연하며, 《동양지광》, 《조광》에 대한 기고로 일본의 전쟁 지원을 선동하는 친일 및 전쟁지원 활동을 벌였다. 또한 일본의 한민족 말살정책인 신사참배 강요에 협조하고, 징병을 권유하는 강연에도 앞장섰다는 것이 그녀의 과오라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연희전문학교의 윤치호 교장과 비슷한데 더 비판받는 듯.[4]


여기에서 공적을 살펴보면, 이화여대를 엄청나게 크게 키우고, 캠퍼스를 확장하고, 해방 이후 최초로 종합대학 인가를 받아냈으니, 총장 역할에 굉장히 충실했다고 할 수 있다. 머리가 상당히 좋았다고 하며[5] 여권향상 부분에서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국회의원 총선에서 낙선한 뒤로 민중들의 여권인식을 향상시키기 위해 YWCA 활동을 열성적으로 추진하였다. 실로 여권운동 향상 부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자기 학교의 여학생들의 정신대 지원을 독려한 사람이 무슨 여권향상 운동을 했다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이대생들을 중심으로 예전부터 동상 철거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한국 대학 대부분이 양지바른 터에 자랑스럽게 친일파 동상을 세워두고 있지만, 실질적인 철거운동을 하는 곳은 이대가 유일하다는 후문. 여담이지만 이 사람의 이름을 따서 만든 교회가 바로 금란교회(金蘭敎會)이다.

2.6. 제8대 김옥길[편집]

김동길 前 연세대 교수의 친누나.[6] 최규하 대통령 시절 문교부 장관을 지냈다.

2.7. 제11대 장상[편집]

수학과 출신. 왕년 철의 여인. '총장은 기독교인 비혼 여성이어야 한다'라는 룰을 깨트린 인물. 정치계로 나가 있다. 학교에 있을 때는 운동권마저 (나쁜 뜻이라도) 철의 여인이라고 그랬는데… 지금은 이재오에게 발리며 빵상(…)이란 별명까지 붙는 등 눈물과 수모의 정치생명사를 쓰고 있다.

2.8. 제12대 신인령[편집]

이화여대의 그 유명한 금혼 학칙을 없앤 인물. 법대 출신이며, 로스쿨 유치에 힘 좀 썼다. 노동법을 전공한 희귀한 여성 법학자였으며, 그와 별개로 학창 시절엔 '내가 서울시내 경찰서 중 안 들어간 곳이 없다' '내가 숨어지냈을 때' 등등의 자랑을 하곤 한다. 후자는 지명수배 이야기다. 그렇기 때문에 파쇼적인 면을 보여주었을 당시 사람들의 절망은 더욱 컸다.

2.9. 제13대 이배용[편집]

2010년 8월까지 총장직을 역임하였다. 인문대학 사학과 출신이다. 총장 임명 전에 역사스페셜에도 출연한 경력이 있다. 장상 총장과 함께 유이한 기혼이다.


이분 이후로 총장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기존 총장은 학생과 거리가 먼 사무적인 총장이었다면, 이 분은 학교 이미지를 대표하고 학생들과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했다. 가끔 총장님 이름으로 학생들에게 문자가 오기도 했다. ("사랑하는 이화인 여러분♥개강을 축하합니다. 신종플루도 조심하길 바래요. 화이팅!" 같은. 하지만 보낸 사람은 총장비서실 소관이라는 소문이 있음.) 학생들 사이에서 배드래곤(Dragon)이라고 불리는 모양.


다만 등록금 문제와 관련해서는 "2년이나 동결했는데 이 정도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거 아님?"이란 말을 하여 '우리나라 등록금 정도면 조낸 싼 거라능'이란 말을 한 이기수 고려대학교 총장과 함께 까이고 있다. 핑크색, 옥색 등 현란한 색깔의 정장을 입고 채플에 등장하는데, 옆에는 항상 총장님의 자그마한 토드백을 드는 비서(가방셔틀)와 함께 나타남 그 때문에 '이핑총(핑크총장)'이라고도 불렸으나, 총장 취임 후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오히려 파란 옷을 많이 입고 학내 행사에 등장하여 '불총(블루총장)'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퇴임 후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 취임. 현재는 자주색 의상을 즐기시는 듯. 참고로 행정고시 강사 정원준에게 까인다.

2.10. 제14대 김선욱[편집]

2014년 8월까지 총장직을 역임하였다. 법대 출신이며, 재학 중 학생회장을 지냈다. (이때 총장이 제8대 김옥길 총장이다. 자세한 에피소드는 김옥길 문서 참조.) 제26대 대한민국 법제처 처장(2005-2007)을 역임하였다.


전임 이배용 총장에게서 전체문자스킬을 배웠는지, 가끔 학생 전체에게 문자를 날리곤 했다. 시험기간에 열람실에 예고없이 나타나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편지와 함께 가벼운 먹을거리를 돌리기도 했다. 따뜻하고 다정한 모습 때문에 엄총(엄마총장)으로 불렸을 정도.


전임 이배용 총장이 문화 쪽에 관심이 많았다면,[7] 김선욱 총장은 이화여대의 아웃풋에 지대한 관심을 보인 편이었다. 법대 교수 출신이었던 이력을 보아[8] 총장 직위에 있는 동안 학생들의 고시 및 각종 시험에 대한 지원이 크고 지속적이었다.

2.11. 제15대 최경희[편집]

사범대 과학교육과를 졸업했고, 사범대 학장을 지냈다. 최초의 이공계 교수 출신 총장이 되었다.


2014년 총학생회 '시너지 이화'가 독선적인 프라임 사업 설립에 대해 반발하자 대동제의 예산을 줄이겠다고 협박했고, 이에 대해 학생처에 대동제 예산의 확충을 요구하자, 총장이 직접 흰 봉투에 100만 원을 넣어 교직원의 손으로 남몰래 총학생회장에게 전달했다는 웃지 못할 사연의 주인공. 총학생회가 이를 비판하며 대자보를 붙이자, "순수하지 않은 학생들과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며 공개면담 약속한 지 이틀 만에 박살내셨다는 전설이 있다.


또한 학생복지를 독단적으로 대폭 축소시킨 후, 전교생이 듣는 채플에서 "졸업 후 기부금을 내겠느냐"는 설문조사의 결과에 서운함을 표하며 "어떻게 졸업 후 기부금을 낼 생각을 하는 사람의 비율이 전국 대학 10위권 안에도 안 들 수가 있느냐. 졸업하면 꼭 기부금을 내도록 하라."는 발언을 하여 논란이 되었다. 이에 대해 총학생회에서 채플 총장 연설을 문제 삼으며 학내 시위를 벌이자, 그 자리에 나타나 학생들을 향해 '쉿, 땡큐~' 라고 하며 유유히 자리를 뜨셨기 때문에 백총, 쉿총, 불통 총장, 멍총 등의 별명을 가졌다. 이화여대 태풍의 눈 수많은 명언을 남기고 있다 학교의 주인은 돌 하나, 나무 한 그루, 삐삐 틀렸읍니다.


최경희 총장 임기 중에는 경찰 병력이 대거 학내 진입하여 피켓이나 현수막 등을 들고 평화시위 학생들을 제압한 일이 2차례 있었다. 첫 번째는 2015년 10월 29일 박근혜 대통령 방문에 대한 시위 때 사복경찰이 학내로 평화시위하는 학생들을 힘으로 제압하여 많은 학생이 부상을 당한 일, 2번째는 2016년 7월 30일 경찰 1,600명 학내진입이다.


이화여대의 수많은 재학생과 졸업생 및 교수들이 이렇게까지 사퇴론을 부르짖게 만든 총장은 없었다. 2016년 10월 정유라 부정입학 관련 논란으로 인해 결국 여론에 견디지 못하고 2016년 10월 19일에 사의를 표명했으며, 정유라의 입학 비리 및 특혜 논란에 연루되면서 구속되어 징역살이를 하게 되었다.

2.12. 제16대 김혜숙[편집]

이화여자대학교 사상 최초 투표제에 의해 선출된 총장이다. 해당 유권자에는 교직원과 재학생 모두 포함되어 있었으며, 김혜숙 교수는 이화여자대학교 정유라 특혜 논란에 의한 청문회 당시 이화여자대학교 미래라이프대학 신설 반대 시위 사건 당시 공권력이 투입되어 학생들이 폭행당한 사실이 언급될 때 눈시울을 붉힌 것으로 큰 이슈가 되었다.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최경희와 극단적으로 대비된 것이 학생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김혜숙 교수의 높은 인기를 의식한 학교 측이 뜬금없이 정년 문제를 들고 나와 입후보가 불가하다고 하여 재학생들의 반발 심리를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선출되었으나, 학교 구성원의 많은 기대를 얻고 이념과 사상에 의해 선출된 차기 지도자인 것에 비해, 정책을 포함한 행정 능력은 매우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2.13. 제17대 김은미[편집]

김은미 총장은 이화여자대학교 역사상 두번째로 직선투표로 선출되었다. 이화여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브라운 대학에서 사회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7년 모교 교수로 임용된 그는 국제대학원 원장, 국제개발협력연구원 원장 등을 맡았다. 2021년 3월부터 임기 시작.

같이 보기

부연설명

  1. 군 가산점 폐지 이후 생겼다...
  2. 사실 이건 신촌-이대역 근처가 워낙 번화가라서 생긴 오해다. 참고로 번화가라면 꼭 이대생만 오는 게 아니다.
  3. 여성임원과 고위직배출 1위의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이다.
  1. 《힙합하는 이대생은 아싸???/이화여대에서 살아남기/VLOG》, 2021년 9월 23일에 확인함 
  2. 엄수아 / 여성신문 기자 (2014년 2월 20일). “군가산점제 위헌판결, 불붙은 논쟁의 시작”. 《여성신문》. 2021년 10월 4일에 확인함. 
  3. 김수정 기자 (2019.6.29). “정마담은 '이대 나온 여자'일까? 김혜수의 '타짜' 뒷이야기”. 《노컷뉴스》. 
  4. 하어영 기자(2017.11.13) "촛불집회 경험이 가장 짜릿했다." 한겨레21
  5. 선대식 기자(2016.10.19) "'사퇴' 최경희 이화여대 총장 "특혜는 없었다"" 오마이뉴스
  6. (2016.10.26) "'朴 대통령 모교' 서강대학교 시국선언[전문]" 비주얼 다이브 사회부
  7. 김경민 기자(2016.10.26) "이화여대 총학생회 '시국선언문'발표... "최순실의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입니까"(전문)" 서울경제
  8. 수정: 2017.11.30 14:37, 입력: 2017 11 30 11:07 (2017년 11월 30일). “이화여대, 김활란 동상 ‘친일 팻말’ 강제철거···학생들 “팻말 치운다고 친일행위 사라지나””. 2021년 7월 4일에 확인함. 
  9. 머니투데이 (2011년 8월 23일). "온갖 특혜 받아챙기더니…" 이화여대 '먹튀' 논란 - 머니투데이”. 2021년 7월 4일에 확인함. 
  10. 김민중. “[단독]이화여대, 학생 사고영상 불법유출 알고도 '쉬쉬'. 2021년 10월 4일에 확인함. 
  11. 김민중. “[단독]이화여대, 학생 사고영상 불법유출 알고도 '쉬쉬'. 2021년 10월 4일에 확인함. 
  12. “[서울의소리] 분노한 이화여대 학생들에게 망신 당하고 쫒겨간 '박근혜'. 2021년 10월 4일에 확인함. 
  13. 기자, 손가영. “이화여대 학생들 "박근혜는 여성 대표할 자격없다". 2021년 10월 4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