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디컬 페미니즘

최근 편집: 2017년 12월 4일 (월) 21:13

급진적 페미니즘 또는 래디컬 페미니즘(영어: Radical feminism)는 법과 제도상 결함보다는 가부장제의 성별 체계 그 자체가 여성 억압의 근본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여성학의 한 갈래이다. 흔히 리버럴 페미니즘에 비교하여, 제 2세대 페미니즘이라고도 한다.

왜 "래디컬 페미니즘"이라고 하는가?

래디컬(radical)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에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로 여성 억압의 근본 원인을 짚어 보고자 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이라는 것이다.[주 1]단, 래디컬 페미니즘 내부에서는 이러한 래디컬 페미니즘이라는 용어 자체가 '여성주의 여성주의'라는 뜻으로, '여성주의'의 핵심 가치가 여성인권이 아니게 된 것이 아이러니라고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다른 의미로서는 가부장제여성 억압을 만들어내는 궁극적인 원인이라고 설명하며 이러한 가부장제를 전복하려 한다는 점에서 급진적이라는 것이다.

한자 번역은 급진적이라는 뜻으로 한정되었다.

역사

래디컬 페미니즘 이전에는 자유주의 페미니즘이, 최초의 페미니즘이자 거의 유일한 주류 페미니즘으로서 주요한 활동으로 여성 참정권 운동을 하였고, 이후 여성 투표권이 쟁취된 후 쇠퇴하였다.

이후 68혁명의 영향을 받아 태어나 1960년대의 새로운 주류가 된 것이 래디컬 페미니즘이었다. 68혁명에서 혁명가를 자처하는 젊은이들이 정작 여성문제에서는 보수적인 것에 대한 문제의식[주 2]이 래디컬 페미니즘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주 3]

1960년에 다시 부상한 페미니즘은 자유주의 페미니즘과 급진적 페미니즘으로 나누어졌는데, 전자의 페미니스트들은 여성 권리 단체, 후자의 여성들은 여성 해방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였다.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은 레드스타킹, 페미니스트들, 뉴욕의 급진적 페미니스트들, 또한 수천 개의 의식 고양(CR)단체를 만들어 활동하였다. 이 페미니스트들은 여성 권리 단체(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과 다르게 정부 기구나 기업을 위하여 일을 한 것이 아니었다. 이들은 1960년대 초 미국을 휩쓸었던 급진 사회 운동에 참여하며(시민권 운동, 신좌파 정치, 평화 운동) 페미니스트 사상을 갖게 된 것이다.

그 이후에 페미니즘 사상에 본질주의가 나타나면서, 급진적 페미니즘 사상은 급진적-자유의지론적 페미니스트와 급진적-문화적 페미니스트들로 갈라진다. 일부에서는 급진적 자유의지론적 페미니스트를 급진적 페미니스트로 보지 않고 자유의지론적 페미니스트라는 분리된 페미니스트로 보기도 하는데, 이 문서에서는 자유의지론적 급진적 페미니스트를 급진적 페미니스트로 포함시켜서 설명하도록 한다.

급진적-자유의지론적 페미니스트와 급진적-문화적 페미니스트는 급진적 페미니즘의 많은 의제에 있어 의견을 달리하는데, 특히 성/성별 체계를 해석하는 부분에서,여성에게 있어 출산의 의미를 해석하는 부분에서,여성들에게 어머니 역할을 해석하는 부분에서 그렇다. 앞으로 이들의 이러한 의견 차이에 대하여 알아보자.

주요 사상

래디컬 페미니즘의 공통적 이론

래디컬 페미니즘이 공통적으로 지니는 이론은 다음과 같다(Alison Jagger& Paula Rothenberg, 1993).

  1. 여성은 역사적으로 최초의 피지배 집단이다.
  2. 여성억압은 사실상 모든 사회에 존재하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3. 여성억압은 가장 근절하기 어려운 억압 형태로 공산주의와 같은 계급사회 철폐만으로는 제거할 수 없다.
  4. 여성 억압은 양적, 질적으로 피해자에게 극심한 고통을 야기하나 그 고통이 압제자나 피해자 모두의 성차별적 편견으로 인해 종종 인식되지 못한 채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5. 여성 억압은 모든 다른 억압 형태를 이해할 수 있는 개념적 모델을 제공한다.

즉 래디컬 페미니즘은 단지 공적인 영역에서 기회의 평등을 주는 '제도 개혁'만으로는 뿌리깊은 여성억압을 해결할 수 없으므로, 여성억압의 근원인 가부장제를 전복하여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성인권 본질에 대한 집중

래디컬 페미니즘은, 여성주의는 그 근원대로, 다른 어떤 것보다도 여성인권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에게는 "(장애인이나 흑인과 같은) 다른 사회적 약자를 고려하지 않고 여성(만)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주 4]"는 비판이 자주 가해지는데, 정작 '에코 페미니즘'은 존재하나 '여성주의 생태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래디컬 페미니즘은 이처럼 페미니즘에게만 유독 다른 사회적 약자와의 연대가 요구되는 것을 비판하며, 이 역시 성차별이자 여성혐오임을 지적한다.

"가장 사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

래디컬 페미니즘의 주요한 의의는 이전의 자유주의 페미니즘이 여성 참정권과 같은 제도적·가시적인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었던 것과 비교하면 뚜렷하게 알 수 있다.

자유주의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구분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었다. 자유주의 이전 정치에서는 권력투쟁에서 밀리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그런데 자유주의가 주류 사상이 된 이후 이러한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구분은, 설사 권력 투쟁에서 밀리더라도(공적 영역에서 패자가 된다 해도) 사적 영역은 침해받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으며, 이것이 자유주의의 가장 큰 의의 중 하나였다.

그런데 래디컬 페미니즘은 이처럼 자유주의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철저히 구분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서 등장한 것이 "가장 사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명언이다. 자유주의는 가정과 같은 사적 영역을 비정치적인 것으로 간주해 정치가 개입해서는 안 되는 부분으로 보았다. 래디컬 페미니즘은 바로 이 점 때문에, (행해지는 범위만 사적 영역일 뿐 사실상 사회 구조적으로 진행되는) 사적 영역에서의 지배 구조와 여성 억압이 본질적인 무대로 나오지 못하는 것, 정치 투쟁의 대상으로 주목받지 못하는 것을 비판했다. 즉 래디컬 페미니즘은 명백한 성차별뿐 아니라 가정폭력, 데이트폭력과 같이, 단지 '사적인 영역'으로만 간주되던 가정과 연애에서의 '은밀'하고 '교묘'하며 또한 일상적인 형태의 성차별주의를 폭로하여 정치적인 문제로 바라보도록 만들었고 이를 극복하고자 한다.

비가시적인 성차별에 대한 투쟁

탄생 초기, 래디컬 페미니즘이 제도적인 성차별뿐 아니라 비가시적이고 사적인 성차별에 투쟁하기 위하여 시도한 전략과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 1960년대1970년대에, 여성이 스스로 여성의 경험과 느낌을 이야기할 수 있는 소집단을 결성하였다.
  • 시위를 통해 성폭행 범죄를 여론화·공론화했다.
  • 여성 상담 센터를 설립하고, 학대받는 여성의 피신처를 개설했다.
  • 여성이 여성의 시각에서 역사나 다른 주제를 연구할 수 있는 여성학 프로그램을 대학에 개설하였다.

이와 같이 여성들은 자신들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지도를 받았다. 래디컬 페미니즘은 이런 방법들을 통해 여성과 남성이 가지고 있는 성차별적 고정관념에 저항했다.

여성 스스로에 내재된 성차별주의에 대한 비판

또한 래디컬 페미니즘은 남성뿐 아니라 여자들도 널리 받아들이고 있는 이런 믿음을 폭로하고 비판하며 극복하고자 한다.

래디컬 페미니즘은 여성은 남성의 성차별주의뿐 아니라 여성 자신에게 내재한 성차별주의 역시 극복의 대상이라고 본다. 여성들 속에 내면화된 성차별주의와 여성혐오를 인정하고, 그 '족쇄'를 깨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적 투쟁

할리우드 영화는 현명하게 나이든 여자를 그리는 법이 거의 없다. 포르노에서, 여성은 사람이 아니라 육체로서, '성적 대상'으로서 묘사된다. 섹스와 사랑을 분리해내어 '포르노'와 같은 분야에 주목한 것이 래디컬 페미니즘의 중요한 이론적 발전이다.

이런 문화와 이미지를 통해 여성은 사회 구조적으로, 매우 체계적이고 은밀하게 착취당하고 억압받는다. 그래서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에 대한 법적·제도적 차별을 제거하거나 완화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으며, 광범위한 '문화적' 투쟁을 아울러 전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장 사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말에 걸맞는 이론을 전개해 나간 것이다.

인물과 사상

성/성별 체계를 해석하기

성별의 억압적 성질 분석

급진적-자유의지론적 페미니스트들과 급진적-문화적 페미니스트들의 양성에 대한 견해들을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성/성별 체계를 규정할 필요가 있다. 급진적 자유의지론적 페미니스트인 게일 루빈에 따르면 성/성별 체계는 "한 사회가 생물학적 섹슈얼리티를 인간 활동의 산물로 변형시킬 때 작용하는 일련의 조처들"이다.그리하여 가부장적 사회는 남성적, 여성적 정체성이나 남성과 여성의 생리 기능과 연관된 일부 사실들을 이용한다. 가부장적 사회는 이러한 이데올로기를 성취해 나가는 과정에서 그 문화적 구성물을 자연적인 것으로 취급하여, 한 인간의 정상성이 그의 성과 성별 정체성에 달려 있다고 확신한다.

급진적-자유의지론적 페미니스트들은 무엇보다도 한 인간의 성과 그 사람의 젠더(남성적 혹은 여성적) 사이에 필수적인 연관성이 있고 또 있어야 한다는 가설을 거부한다.그 대신 그들은 젠더와 성별이 분리될 수 있고, 가부장적 사회는 여성들을 계속 수동적인 사람으로 그리고 남성들을 계속 적극적인 사람으로 유지시키기 위해 엄격한 성별 역할들을 이용한다고 주장한다.

자유의지론적-급진적 페미니스트 관점들

여성 억압의 근원이 가부장제의 성별/젠더 체계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고 주장한 최초의 급진적-자유의지론적 페미니스트들 중 케이트 밀렛이 있었다. 밀렛은 성의 정치학(1970)에서 무엇보다도 남성-여성 관계는 모든 힘의 관계의 패러다임이기 때문에 성은 정치적이라고 주장했다. 남성들의 공적, 사적 세계의 지배가 가부장제를 구성하기 때문에, 여성들이 해방되고자 한다면 남성의 지배는 제거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남성의 지배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가부장제 하에서 구성된 젠더, 특히 성적 지위, 역할 및 기질을 제거해야 한다.

밀렛에 의하면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는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차이점들을 과장하여, 남성은 항상 지배적 또는 남성적 역할을, 그리고 여성은 항상 종속적 또는 여성적 역할을 담당하도록 확정짓는다.이 이데올로기는 매우 강력하여 남성들은 여성들에게서도 동의를 확보할 수 있다. 남성들은 학교, 교회, 가정 등의 제도를 통해 이렇게 하는데, 각각의 제도는 남성에 대한 여성의 예속을 정당화하고 강화해서 여성들은 남성에 대한 열등감을 내면화한다. 만일 여성이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수용하기를 거부하고 자신의 예속성을 떨쳐버리면 남성은 강제력을 동원할 것이다. 여성들은 가부장제 하에서 살아남고자 한다면 오히여 "여성적"으로 행동하는 편이 더 좋으며 만약 그렇지 않으면 잔인한 처사를 당할 것이다.

밀렛은 모든 여성들을 굴복시키려는 남성들의 시도가 계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여성들이 남성의 완전한 통제하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예를 들어 뉴욕 주의 세네카 폴즈에서 1848년 시작된 여성 운동을 꼽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00년대의 여성 운동은 깊이 묻혀 있는 성별/젠더 체계의 뿌리에까지 도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여성을 완전히 해방시키지 못했다. 그 결과 20세기의 가부장제 세력은 19세기 페미니스트들에게 빼았겼던 터전을 다시 회복했다.

밀렛은 1930년~60년 사이에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공격을 극명하게 했던 가부장제 선도자들로 작가 D.H. 로렌스, 헨리 밀러, 노만 메일러를 꼽았다. 케이트 밀렛에 따르면, 남성들로부터 여성들이 성적 학대를 당하고 굴욕감을 느낄 정도로 창피당하는 관계를 묘사한 이들의 글을 여성들은 이상적인 성적 행동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여성들은 그와 일치되지 못하는 자신을 성적 실패자들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예로 들 수 있는 글은 섹서스인데, 이 글에서 여성은 성적으로 창피와 모욕을 당하면서도 매우 그를 즐기는 여성으로 나온다. 밀렛은 섹서스의 독자들이 허구와 실재를 구별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 포르노 문학은 종종 광고와 똑같은 방식으로 기능을 발휘한다고 말했다. 잡지 표지를 장식한 모델의 몸매는 모든 여성의 기준이 된다. 명확한 법령을 발표할 필요 없이 여성들은 자신에게 기대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밀렛은 이 포르노 문학가들 외에도 신 프로이트 학파 심리학자들과, 파슨즈 학파의 사회학자들은 페미니스트들에 대해 공격을 주도한 가부장적 그룹들이라고 지목했다. 비록 프로이트가 섹슈얼리티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 하는 마음이 초기에는 좀 더 나은 진보적 단계라고 여겨졌긴 하지만,밀렛은 프로이트의 제자들이 스승의 글을 이용해 "두 성간의 몹시 불공평한 관계를 합리화하고, 전통적 역할들을 승인하며, 기질상의 차이점을 유효한 것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이와 유사하게 명망 높은 사회학자인 탈코트 파슨즈의 추종자들도 남성적 여성적 특성의 구분이 생물학적/자연적이며 엄격한 성별 이형성이 없다면 사회는 지금만큼의 기능도 발휘할 수 없는 것이라고, 여성의 남성에 대한 예속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밀렛은 가부장적 반응들에 대한 논의를 결론지으면서 낙관적인 어조를 택했다. 밀렛은 20세기 페미니스트들이 19세기 선배들이 저지른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 굳게 다짐했다. 밀렛은 우리 시대의 페미니즘에서 새로운 사회를 창출하고자 하는 확고한 노력을 보았다.

밀렛은 1970년에 양성적 미래를, 즉 별도의 남성적 하위문화와 여성적 하위문화의 통합을 기대하면서도 이러한 통합이 모든 남성적 특성과 여성적 특성에 대한 철저한 평가와 함께 조심스럽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예를 들어 여성적인 순종은 긍정적인 성질로 찬양되어서는 안된다. 남성적인 공격성도 마찬가지다. 각각 개별적으로 긍정적인 성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성적 오만과 여성적 비굴함을 결합시키는 것도 둘은 대립적인 관계이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또다른 급진적- 자유의지론적 페미니스트인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은 케이트 밀렛과 마찬가지로 여성 예속과 남성 지배의 성적/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위한 토대가 남성과 여성의 생식 역할들에 뿌리박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파이어스톤은 이 문제에 대한 밀렛의 해결책(성적 이중 기준의 제거나 이원적 부모 제도)이 부적절하다고 믿었다. 파이어스톤은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출산에서 자유롭게 만들고, 사회적으로 구성된 여성성과 남성성의 감옥에서 여성의 개성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훨씬 더 강도 높은 변혁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종류의 인간 해방을 위해서는 생물학적, 사회적 혁명이 필요할 것이라고 파이어스톤은 말했다. 즉, 인공적인 재생산이 자연적인 출산을 대체해야 할 것이고, 서로가 서로를 선택하는 의도적인 가정이 유전적 가정을 대체해야 할 것이다.

파이어스톤은 생물학적 가정의 종말과 함께 무엇보다도 부모-자식 사이의 근친상간을 금지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기초한 가정 상황이 붕괴될 것이라고 주장했다.인간이 다시 한 번 모든 유형의 성행위를 즐기게 되면서 생식기적 성은 단지 한 종류의 성적 경험으로 비교적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될 것이다.

파이어스톤은 남성과 여성이 진정으로 자유롭게 다형태의 기이한 성행위에 참여하게 되면 더 이상 남성들은 단지 "남성적" 정체성과 행태들만을 그리고 여성들은 단지 "여성적" 정체성과 행태들만을 나타낼 필요가 없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젠더에서 자유로워진 여성들은 더 이상 남성들에게 자신을 지배해달라고 신호들을 보낼 필요가 없을 것이다.그 대신 남성과 여성은 여성적 남성적 특성과 행태들을 그들이 소망하는 그 어떤 방식대로든지 결합하여 조화를 이루도록 권장될 것이고, 모든 문화가 양성적이 될 것이다.

파이어스톤은 우리의 문화가 과학과 기술을 남성 그리고 인문학과 예술을 여성과 연계시키고 있다고 믿었다. 그리하여 현실에 대한 "남성적 반응"은 "기술적 반응"으로, "여성적 반응"은 "미학적 반응"으로 구분된다.단지 위에서 말한 생물학적 혁명으로 "남성"과 "여성" "남성적" 그리고 "여성적" 사이에 그려진 엄격한 구분선을 유지할 필요성이 제거될 때 비로소 우리의 문화가 과학 과 예술의 간격을 메우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양성적인 사람들은 "기술적인 것" "미학적인 것" 같은 범주들이 "남성적" "여성적"이라는 범주들과 함께 파이어스톤이 말하는 "상호 취소"(물질-반물질이 폭발하여 잽싸게 소실되는 현상)를 통해서 사라져 버린 양성적인 문화에서 그들 자신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그런 세상이 오면 남성은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 더 이상 땀흘려 일할 필요가 없고, 여성은 자녀 출산의 고통을 겪을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분명히 양성에 대한 파이어스톤의 생각은 밀렛과는 아주 다르다. 실제로 우리는 그것이 엄격한 의미에서 양성인지 아닌지를 의문하게 된다. 파이어스톤의 이상적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상 사회의 이상적인 사람은 우리가 현재 남성적 그리고 여성적이라고 이름붙인 일련의 성질들을 혼합시키기 때문에, 결국 양성에 대한 파이어스톤의 해석은 밀렛의 해석의 연장선상에 있다. 밀렛의 이상적인 양성적 인간은 최상의 남성적 여성적 성질들을 균형 있게 조합시키는 반면, 파이어스톤에게는 양성적이 되는 방식이 결코 단 한가지 만이 아님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급진적-문화적 페미니스트 관점들

프렌치는 남성-여성의 차이점들이 사회화(후천적)보다 생물학(선천적)에 기인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프렌치는 급진적-자유의지론적 페미니스트보다 급진적-문화적 페미니스트로 분류되었다. 그런 까닭에 그녀의 양성적 인간에 대한 이론에는 남성적 특성보다 여성적 특성들이 훨씬 더 많이 편입되어 있다.프렌치는 자신의 저서 힘을 넘어서서에서 여성의 전통적 특성들이 남성의 전통적 특성보다 더 훌륭하다는 점을 시사하는 양성의 형식을 보여주었다. 프렌치는 15년 전의 밀렛이나 파이어스톤과 마찬가지로 남성들의 여성 억압이 논리적으로 다른 인간 지배 체계들로 인도한다고 주장했다.만일 남성의 여성 지배가 정당화될 수 있다면, 갖가지 모든 지배 형태를 정당화할 수 있다.

프랜치는 가부장제의 기원들을 탐구한 후 초기 인간들은 자연과 화합하며 살았다고 결론지었다. 초기 인간들은 자신들이 큰 전체 속의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프랜치는 한 그룹이 생존 지향적 활동을 할 때 중심은 어머니였기 때문에 첫 번째 인간 사회는 모계 중심적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또한 인구가 증가하면서 불가피하게 음식이 부족해졌다고 추정했다. 인간은 기술을 개발했고 자연을 개간했다.이 과정에서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점차 분리되었다.자연에 행사하는 통제력이 증가한 결과로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소원하게 되었다. 소원함은 적개심이 되었고 적개심은 두려움, 두려움은 원한이 되었다. 이러한 부정적 감정들은 여성들에게 향했다. 여성은 생식 역할 때문에 자연과 연합되었기 때문이다.

여성/자연을 지배하고자 하는 남성의 욕망으로 상위 세력을 귀히 여기는 가부장제가 생겨났다. 상위 세력은 점차 우두머리가 되었고, 가부장적 경쟁은 필히 인간 갈등으로 인도할 것이라 프랜치는 추정했다.

프랜치는 특히 요즈음에는 핵에 의한 대학살로 확대될 수 있으므로 이 세상의 갈등을 없애기를 소망하여, 여성적 가치들이 가부장제 이데올로기가 창출해낸 남성적 사회로 재통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프랜치가 말하는 최고의 사회는 역사적으로 여성적인 가치들을 여성적으로 남성적인 가치들과 마찬가지로 각각의 남성 여성이 열렬하게 수용하는 사회이다. 그러나 프랜치는 실제로는 남성적 가치들보다 여성적 가치들을 더 귀중하게 여겼으며, 남성적 가치를 승인할 때마다 개념의 언어적 재해석을 거쳤다.

프랜치의 양성에는 여성의/여성적 특성은 그대로 둔 채 남성의/남성적 특성들에 대한 상당한 재해석이 포함된다는 것이 힘을 넘어서서를 통해서 점차 분명해졌다. 과거에는 "인간다움"이ㅣ 유해할 정도로 파괴적이고 힘을 담당하는 남성적 세상과 동일시되었기 때문에, 현재와 미래에는 그것이 창조적이고 힘을 공유하는 여성적 세상과 동일시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남성적 세계는 상위 세력의 가치에 기초하기 때문에, 단지 소수의 사람만 그를 수용할 수 있다. 그리하여 가부장이 된다는 것은 분별 없고 욕심스러운 힘의 남성 대표자가 되는 것이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여성적 세상은 즐거움의 가치에 기초하기 때문에, 수없이 많은 존재 방식들과 행동방식들을 수용할 수 있다. 프랜치는 즐거움이 매우 광범위하고도 심오한 개념으로, 성숙한 인간이 겪어야 한다고 여겨지는 모든 경험들을 포용한다고 생각했다.

프랜치는 분명 상위 세력이라는 남성적 가치를 싫어했기 때문에, 양성적인 사람은 함께 하는 즐거움과 그녀가 "대응 세력"이라고 칭한 여성화한 상위 세력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프랜치는 힘이 파괴 욕망(상위 세력)이 아니라 창조 욕망(대응 세력)으로 나타나기만 한다면, 사람들이 그들의 인생에서 즐거움은 물론 힘을 가지는 것은 좋은 것이라고 역설했다.

급진적-문화적 페미니스트인 댈리는 밀렛,파이어스톤,프렌치보다도 더 강하게 전통적인 남성적 속성들을 비난했다. 댈리는 비록 하나님 아버지를 넘어서서에서는 양성에 대한 호소로 시작하였지만, 궁극적으로 그녀는 "남성적", "여성적"이라는 용어들을 혼란스러운 가부장제의 산물이라고 거부했다. 용어를 변형시키는 댈리의 여행길은 여성/생태학을 거쳐서 순수한 욕망에서 끝이 나는데 이 책에서 그녀는 급진적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분리주의자들을 용감하게 옹호하였다.

댈리는 첫 번째 주요 저서인 하나님 아버지를 넘어서서:여성의 해방 철학을 향하여에서 하나님이 남성과 여성 모두의 의식에서 차지하는 왕위에서 물러나지 않는 한,여성은 결코 완전한 인간의 권위를 부여받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모든 가부장에 대한 패러다임으로서의 하나님에 관심을 집중시킨다.이 책에서 반복되는 개념이 시사하는 것은 만일 누군가가 상위 세력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면 그것은 초월적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초월적 하나님은 나-그것,주체-객체,자아-타자의 관계의 관점에서 생각한다.이 초월적 하나님에게 낯설은 것은 그가 총체적 무에서 만들어낸 자연 세계이다.그리하여 출산 능력 때문에 자연과 연합되는 여성은, 하나님과 남성이 담당하는 주체와 자아의 역할들에 반하여 객체와 타자의 역할들을 담당한다. 댈리는 과거의 초월적 하나님이 여성을 거부했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새로운 보편내재적 하나님으로 대치시키기를 소망했다. 보편내재적 하나님은 우주의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거주하면서 나-당신,주체-주체,자아-자아 관계의 관점에서 생각한다. 그리하여 여성은 이 하나님 앞에서 남성과 동등하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나-그것 사고가 반영되는 주요한 방식 중 하나는 인간 사회를 두 그룹으로 양극화하는 엄격한 남성적, 여성적 성별 체계라고 댈리는 말했다. 남성들은 여성을 제2의 성으로 인식하고 규정하기 때문에, 각각의 남성은 나 또는 자아가 되고 각각의 여성은 그것 또는 타자가 된다. 그렇다면 나-그것 사고와 초월적 하나님을 극복하는 방법은 두 형식을 모두 넘어서는 양성적 인간을 구축하여 성별 이형성을 분해하는 것이다.

댈리는 하나님 아버지를 넘어서서에서 양성을 명백하게 수용하였지만, 그녀의 양성 개념은 밀렛이나 파이어스톤보다 프렌치의 개념에 더 가깝다. 댈리는 양성의 "다원주의적"(남성과 여성은 개별적이지만 평등하고 상보적인 특성을 지님) 모델과 "동화" (인간다움 성취를 위해 남성적 여성적 특질의 통합이 필요) 모델을 모두 거부했다. 댈리가 지적했듯이, 이 모델들은 "남성성"과 "여성성"이 보존 가치가 있는 개념인지 논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완전하다.

프렌치는 전통적인 남성적 특질들을 재해석하는 데 관심이 있었던 것 같고, 그와는 달리 댈리는 전통적인 여성적 특질들을 재해석하는 일에 몰두했던 것 같다.댈리는 긍정적인 여성적 특질들이 피학성 변태성욕적인 여성적 "덕목들"과 구별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댈리는 여성성 개념을 고찰하고서 이 개념에는 여성이 추구할 만한 좋은 것이 전혀 없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녀는 가부장제가 이브는 물론 마리아를, 창녀는 물론 마돈나를, 부정적인 여성적 특징들은 물론 긍정적인 여성적 특질을 구축했다고 주장했다. 댈리는 이것들이 모두 가부장제의 감옥 속에 여성들을 빠뜨릴 목적으로 남성들이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에 외견상 나쁜 것 뿐만 아니라 좋은 것들도 함께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댈리는 여성/생태학에서 양성을 단호하게 거부하게 되면서 니체가 가치 체계를 전도함으로써 인도되었던 그 지점으로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인도되었다. 댈리는 지배적인 선악 개념에 대응하여 선은 무엇이고 악은 무엇인가를 다시 규정하게 되었다.댈리가 니체적인 이유는 여성과 관련지어서 가부장이 사악하다고 지목하는 여인은 사실상 착한 반면, 가부장이 선하다고 지목한 여인은 사실상 악하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댈리는 여성 자신들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여성이 추한 노파가 되는 것은 좋은 것이다.

댈리는 여성/생태학을 집필할 때 분명히 양성적 인간의 이상을 거부하고, 남성성과 여성성을 초월하여 살아가는 자유분방한 여성의 이상으로 대치하였다. 여성은 완전한 인간이 되려면 여성성을 벗어버려야만 여족장제에서 자신의 생활을 영위했을 경우 여성이 가졌을 그런 자아로서 그녀 자신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댈리는 순수한 욕망:기본적인 페미니스트 철학에서 계속해서 가치체계를 전도시킨다.여성들은 강건해지기 위해 양성의 올가미에 저항해야 한다.남성들은 양성적인 사람이 된다는 것이 그들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점차 인식하게 된다.남성들은 여성의 에너지를 모두 그들의 신체와 정신 속에서 뺴내어 포섭하거나 소모시키길 원한다. 여성들은 양성이라는 여성 말살 과정에 굴복하는 대신 남성들로부터 거리를 유지하고서 강력한 자기 이해체계를 새롭게 만들어내야 한다고 댈리는 말했다.

순수한 욕망에서 인상적인 점을 댈리가 용어에 새로운 의미들, 즉 규범적인 동시에 서술적인 의미들을 부여하는 능력이다. 욕망(lust)이라는 용어가 그 적절한 예이다.그것은 성적 욕망, 호색, 음란함 등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욕망은 사악한 것이라고 댈리는 시인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우리가 가부장제 속에서 여성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가부장제의 노예 도덕 체계를 가지고서 살기 때문이다. 비가부장제 사회에서 산다면, 욕망은 좋은 의미들도 나타낼 수 있다고 댈리는 말했다.

순수한 욕망은 여성에게 도덕적 덕목과 도덕적 악덕으로 간주되던 것의 가치체계를 전도시켰다. 특히 그것은 가부장제 세력이 어떻게 자연스러운 여성들에게서 진정한 열정을 빼앗고 나서, 그 대신 댈리가 "합성적"이고 "통속화한" 것이라고 부른 온갖 종류의 열정들(허위의 열정들)로 대치하였는가를 보여주었다. 댈리에 의하면 합성적인 열정들은 진정한 열정들에 대한 대체물이 결코 될 수 없다. 여성들을 의미심장한 행동을 하도록 자극하는 진정한 열정들과는 대조적으로 합성적 열정들은 여성들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성취감이라는 합성적 열정이 환희라는 진정한 열정과 혼동되어서는 아니 된다. 댈리는 성취감이 바로 프리단이 말한 "이름 없는 문제점"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말했다. 댈리는 또한 통속화한 열정도 합성적 열정들과 마찬가지로 진정한 열정들의 빈약한 대치물이라고 말했다.

섹슈얼리티의 억압적 성질 분석

  • 앤 퍼거슨에 따르면 급진적 자유의지론적 페미니스트들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1. .다른 성적 실천들은 물론 이성애의 특징은 억제이다. 가부장적 부르주아 섹슈얼리티의 기준들은 성적 소수자들에게 낙인을 찍어서 대다수의 사람들을 계속 순수한 상태로 통제력 하에 둠으로써 모든 사람들의 욕망과 즐거움을 억제한다.
  2. .페미니스트들은 성적 소수자들에게 낙인을 찍고 그리하여 모든 사람들의 자유를 제한하는 모든 이론적 분석들, 법적 제한, 또는 도덕적 판단들을 폐기해야 한다.
  3. .우리는 페미니스트로서 즐거움이나 만족감을 주는 행위는 그 무엇이든지 실천할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함으로써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지배력을 되찾아야 한다.
  4. .이상적인 성적 관계는 그들이 선택하는 모든 수단을 이용하여 서로의 성적 즐거움이나 만족감을 극대화하도록 충분한 협상을 통하여 합의하는 동등한 파트너들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 앤 퍼거슨에 따르면 급진적 문화적 페미니스트들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1. .이성애적인 성 관계는 일반적으로 여성에 대한 남성의 성적 폭력을 지원하는 성적 객관화 이데올로기(주체/주인으로서의 남성, 객체/노예로서의 여성)의 특징을 지닌다.
  2. .페미니스트들은 남성의 성적 폭력을 지원하거나 또는 그것을 정상적인 것으로 만드는 모든 성적 관행들을 거부해야 한다.
  3. .페미니스트로서 우리는 남성의 성적 선호사항들과 다른 우리 자신의 성적 선호사항들에 대한 관심(즉 행위보다 친밀감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임)을 증대함으로써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통제력을 되찾아야 한다.
  4. .이상적인 성 관계는 감정적으로 연루되고 양극화된 역할에 참여하지 않는 진정으로 합의가 이루어진 동등한 관계의 파트너들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퍼거슨의 평가에 의하면, 게일 루빈이 급진적 자유의지론적 페미니스트 이데올로기를 가장 분명하게 대변하고 있다.

루빈은 비록 이 사회들이 모든 성을 일반적으로 나쁘고, 위험하고, 파괴적이며, 부정적이라고 간주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그들은 일부 유형의 성이 특히 그렇다고 간주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전형적으로 현대 서구 사회의 평균적인 사람은 "결혼하여 출산하는 이성애자들을.. 성애적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올려놓고, "성전환자, 복장 도착자, 물신숭배자, 사도마조히스트, 매춘부나 포르노 모델과 같은 성 노동자, 그리고 가장 저급한 사람들, 즉 그들의 에로티시즘이 세대적 경계선을 위반하는 그런 사람들"을 성애적 피라미드의 맨 밑바닥에 위치시킨다.

루빈은 성적 억제야말로 문명 세력들이 인간 행태를 통제하는 가장 잔인하고도 가장 비합리적인 방식 중에 속한다고 확신하고서,성적 허용이 남성뿐 아니라 여성에게도 최고의 이익이라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루빈은 반페미니스트들이 여성들에게 그들의 성적 역할이 남성들의 성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잘못인 것처럼 급진적-문화적 페미니스트들이 여성들에게 일부일처적인 레즈비언이즘에 참여하라고 말하는 것도 잘못이라고 역설했다. 루빈에 의하면 성적 억제는 결국 성적 억제이다.

대부분의 급진적 문화적 페미니스트들은 루빈과 대조적으로 남성 섹슈얼리티는 내재적으로 잘못된 것이므로 그것을 거부하라고 여성들에게 경고했다. 그들은 여성 섹슈얼리티가 남성 섹슈얼리티보다 내재적으로 뛰어나다고 말했다. 급진적 문화적 페미니스트들은 성으로부터 남성들은 "힘과 오르가즘"을 여성들은 "상호관계와 친밀성"을 원한다고 주장하며, 가부장제 내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이성애 관계들은 여성들에게 불행한 일이라고 결론내렸다. 이성애는 남성 지배와 여성 종속과 관련된다. 그리하여 급진적-문화적 페미니스트들에 의하면 여성 해방을 위한 열쇠는 "모든 가부장적 제도들(예를 들면 포르노 산업, 가정, 매춘, 및 강압적 이성애)과 성적 객관화를 발생시키는 성적 실천들(사도마조히즘,어슬렁거리며 손님을 찾기, 성인/어린이 그리고 동성애에서의 남성역할/여성역할 관계)을 제거하는 것이다.

포르노물: 여성 섹슈얼리티에 대한 남성 지배의 상징인가 여성 지배의 기회인가?

급진적 자유의지론적 페미니스트들은 우리 사회가 건강하고 단호한 섹슈얼리티의 이미지들을 거의 제공해주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 특히 여성들이 성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성적 약탈자인 남성의 이미지를 여성들에게 잔뜩 공급하고 지갑에 대한 지배력을 획득하는 성적 유혹자 여성의 이미지를 남성들에게 제공한다. 급진적 자유의지론적 페미니스트들은 인간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그러한 부정적 견해를 거부해야 한다고 믿었다. 성은 좋은 것이 되기 위해서는 사랑과 연관되어야 한다는 견해는 바로 여성들이 도전할 필요가 있는 생각이다. 급진적-자유의지론적 페미니스트들은 여성들이 포르노물을 이용해 성적 열정과 즐거운 성적 환상을 만들어낼 수 있으므로 성적인 자료들을 실컷 보라고 권장했다. 폭력적인 포르노물 포함 어느 것도 금지되어서는 안된다. 한 여성이 강간당하고 싶은 환상을 갖는 것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물론 실제 생활에서 그를 강간과 구분하는 선이 말살될 수도 있다고 그들은 시인했다. 하지만 여성이 힘을 쓰는 게 섹스를 섹시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 것이 실제 생활에서 남성의 폭력 대상으로 자원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시각적 재현물들이 실제 생활에서 여성들을 침해한다고 주장하기보다 원한은 진짜 강간범들을 위해 비축해 놓고 포르노물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급진적 자유의지론적 페미니스트들은 주장한다.

이러한 급진적 자유의지론적 페미니스트들의 포르노 옹호 발언은 급진적 문화적 페미니스트들의 포르노 반대를 강화시켰다. 급진적-문화적 페미니스트들은 섹슈얼리티와 성별이 똑같이 억압적인 사회 세력들의 산물임을 역설했다.포르노물은 바로 여성이 담당하고 있는 남성의 시녀, 조력자, 관리인, 놀이감으로서의 역할에 대한 가부장적 선전인 것이다. 남성들은 그들 자신들을 위해서 존재하는 반면에 여성들은 남성들을 위해서 존재한다. 남성들은 주체이고 여성들은 객체이다.

래디컬 페미니스트 단체들

  • <지옥에서 온 국제 여성 테러리스트 음모단(WITCH)>
  • <레드스타킹즈>
  • <페미니스트들>
  • <뉴욕 래디컬 페미니스트들>

한국의 래디컬 페미니즘

한국에서 래디컬 페미니즘의 직접적 계기가 되는 것은 1970년대에 유행한 자유주의 페미니즘과 1980년대에 유행한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사회주의적 페미니즘이라고 할 수 있는데, 래디컬 페미니즘은 이 세 가지 흐름을 '페미니즘을 독자적으로 보지 않고 전체 사회운동 속에서 위치짓는 남성들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이라고 지적하며 나타났다. 마녀돌꽃모임과 같은 래디컬 페미니스트 소모임은 이런 경향을 가장 두드러지게 보여주었다.[1]

래디컬 페미니즘적인 성격을 띄는 대표적인 단체로는 여성시대, 메갈리아, 워마드 등이 있으며, 쭉빵카페, 인스티즈 등 다른 여초카페에서도 종종 이러한 성향이 나타난다. 리버럴 페미니즘상호교차성 페미니즘이 주류인 대한민국의 여성인권단체(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단체연합)에서도 종종 이러한 성향이 나타난다.

특히 온라인 사이트에서 태동하여 페미니즘의 부흥을 불러온 메갈리아워마드는 전형적인 래디컬 페미니즘의 한 조류이다.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과 젠더 개념의 거부를 실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이들의 주류인 '도덕성을 버린 여성'의 모습 역시, 높은 도덕성을 요구받는 여성이라는 천장을 깨버린 셈이기 때문이다.

같이 보기

갈래

급진적 페미니즘을 다시 여러가지로 구분할 수 있으며 이들은 상당한 차이를 지니고 있다.

비판

  • 여성은 여성이기 때문에 억압당하고 남성은 남성이기 때문에 억압하는 위치에 선다는 본질주의적 함정에 빠져들게 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 상호교차성 페미니즘에게 인간을 여성과 남성으로 양분한 후 비판하여 그에 맞지 않는 수많은 퀴어들을 지운다는 비판을 받는다.또한 여성의 개인적 특성(인종,국적 등)을 무시한다는 비판도 받는다.
  • 초역사성을 너무 강조해서 역사적 맥락과 사회, 문화적 조건을 간과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 일부 래디컬 페미니스트의 트랜스,게이포빅 현상이 비판받기도 한다.

여담

  • 가끔, 페미니즘에 무지한 사람이 자신의 마음에 안 드는 페미니즘 갈래를 지칭해야 할 때, 잘은 모르겠지만 일단 아마도 이것이 제일 '급진적(변혁적)'인 페미니즘일 것이라는 착각해서 쓰는 말이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이전에 있었던 호주제 폐지운동이 있었다.
  • 나무위키에서는 래디컬 페미니즘이 페미니스트 사이에서 가장 비판받는 페미니즘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2017년 현재 페미니스트 사이에서 가장 비판받는 페미니즘은 없다, 단지 서로끼리 상호비판만 있을 뿐이다.[주 5] 물론 학문은 원래 논쟁과 교류를 통해 발전을 하기에 서로간의 비판은 나쁜게 아니다.진화론,사회주의 등의 여타 학문들도 그런 과정을 통해 발전하였기 때문이다.
  • 12월 3일 오후 6시 32분에 반달이 있었다.

부연 설명

  1. radical의 어원인 라틴어 '라딕스(라틴어: radix)'는 뿌리라는 뜻이다.
  2. 지금과 다를 바가 없군
  3. 68혁명은 "나는 혁명을 생각할 때마다 섹스가 떠오른다."는 문구로 대표되는, 성 해방을 위한 혁명이기도 했다.
  4. "(역차별이라면 모를까) 요즘 같은 세상에 여성차별이 어디 있어?"
  5. 래디컬은 리버럴을 여성차별의 근간인 가부장제를 못보고 단지 제도적 성평등에만 머문다고 비판하고, 상호교차는 래디컬을 보고 여성의 개인적 특성과 PC(정치적 올바름)을 비판한다.

출처

  • 테렌스 볼, 리처드 대거. (2006). 현대 정치사상의 파노라마. 아카넷
  • 이재경. (2007). 여성학. 미래M&B.
  • 페미니즘 사상 -종합적 접근-. 로즈마리 퍼트남 통. 한신문화사(2000)
  1. “아버지의 ‘순리’를 거역한다”. 《한겨레21》. 1998년 7월 9일. 2017년 12월 1일에 확인함. 
  2. 페미니즘 사상-종합적 접근-. 로즈마리 퍼트남 통. 한신문화사